작년 12월 1일 겨울의 초입,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합천 벚꽃마라톤 10km 코스에 접수 신청을 했었다.
겨울 내내 게을러지지 않겠다는 다짐과 새로운 도전으로 나를 계속 깨우고자 하는 의지였다.
3km도 근근이 뛰던 내가 10km 마라톤에 도전하다니, 꾸준한 노력이 눈에 보이는 성장으로 이어져 감회가 새로웠다.
하프나 풀코스 뛰시는 분들이 보면 귀엽다 하시겠지만. ㅎㅎ
준비하는 동안 체력이든 인내심이든, 어쨌든 하루하루 나아지는 무엇이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원래 목표는 1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내 비루한 몸뚱이로는 도저히 깰 수 없는 시간이었다.
대회 전 날, 워밍업으로 4km 를 뛰었는데 다리도 무겁고 뭔가 뻣뻣한 것이
에이 그냥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재밌고 즐겁게 완주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생애 첫 마라톤 대회 당일, 25년 3월 30일.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린, 봄 치고 상당히 추운 날씨였지만, 이미 벚꽃은 우리들을 활짝 맞이하고 있었다.
1만3천명이 집결한 합천운동장에는 축제 분위기로 한껏 달아올라 매서운 바람조차 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감에 들떠 버린 내 마음의 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계주 시합 출발선에 섰을 때의 그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직 뛰기도 전인데 이미 터질듯한 심장과 오로지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집중한 오감, 그리고 그날의 함성소리가 떠올랐다.
이래저래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준비운동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드디어 출발!
코스 별로 수천 명이 동시에 출발하는 만큼, 시작은 조심조심해야 했고 운동장을 빠져나가자 환한 벚꽃길이 나타났다.
만개한 벚꽃송이와 샛노란 개나리들 사이를 달리며 살아있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에 꽃잎들은 비처럼 흩날리고 심장은 쿵쾅쿵쾅.
그리고 저마다의 힘듦을 조용히 이겨내는 수많은 발걸음들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너무 힘들어서 걷고 싶어질 찰나, 길가에서 따뜻한 응원소리들이 들려왔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힘내세요!! 다 왔어요 파이팅 할 수 있다!!
이런 응원소리를 언제 들어봤더라. 갑자기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이 스치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임에도 이렇게 힘이 될 수 있구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그 목소리는 오늘이 지나도 오랫동안 내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질 것 같았다.
힘들고 지칠 때 타인의 응원은 심지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힘 있고 강력한 것이었다.
생애 첫 마라톤은 성공적이었다.
목표였던 펀런(FunRun)은 물론, 기록도 1시간 2분 29초로 마음에 들었다.
날씨 덕분인지, 컨디션 덕분인지, 함께 달린 사람들 덕분인지, 평소보다 힘들기도 덜 했다.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에너지를 가득 받아올 수 있어서 행복했고,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도 느껴졌다.
하프나 풀코스를 뛰는 분들은 보통 분들은 아닐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승기를 잡는 사람들, 그 안에 쌓였을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그를 단단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처음 해보는 시도라는 것들이 줄어든다.
사회에 적응할 대로 해버렸기도 하고, 더 이상의 변화는 머리 아픈 것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귀찮고 어렵운데 굳이 뭐 하러.
하지만 나는 그렇게 녹슬기는 싫다.
우리는 반복적이고 지겨운 일상을 심지어 바쁘게, 빡빡하게 수행하며 살아간다.
일상에 그렇게 쫓겨 살다 보면 어느새 나를 잊고 지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기 전에 자신에게 맞는 쉼을 찾아다 줄 건강한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에 책갈피 꼽듯이 좋은 추억을 만들 수도, 소중한 취미를 찾을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