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나이가 되고도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성숙한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꼬마는 왜 아직도 꼬맹이인지.
청소년 시기에는 감정 변화의 폭이 지금보다 더 컸었다.
그래도 어릴 땐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포장이 가능했고, 사춘기를 구실 삼아 묻어갈 수 있었다.
공감과 감정 이입을 잘하는 덕에 사교적이라는 좋은 점도 있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감정에 휘둘렸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 호르몬의 노예가 되곤 한다.
세로토닌의 분비가 적어지며 심한 경우 불안, 우울, 예민한 증상이 나타나고 안 그래도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인데, 그날이 되면 더욱 널을 뛰는 것이다.
아이들이 생애 처음 신체적으로 이런 성징의 변화를 겪는 시기가 되면 제멋대로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기가 서툴어 힘들어한다. 그러니 사춘기에 예민하고 삐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나도 그땐 사춘기가 유세인 양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철없는 짓도 했더랬지.
모든 게 투명했던 그 시절,
우리는 친구에게 섭섭하면 삐지고 티 내고 눈물의 화해를 하고 그럼 또 손잡고 신나게 놀았다.
얕은 갈등이었지만 그땐 그게 전부였던, 한없이 순수했던 그때,
격하게 부딪히고 마음껏 표현하며 그렇게 자랐다.
이제는 그렇게 감정을 솔직하게 다 드러냈다가는 예민덩어리,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의연하고 여유롭고 큰 타격감 없는 이성적인 모습이 성숙하고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라 느껴진다.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의 감정은 함부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숨기기만 해도 되는거면 다행이다.
오히려 내 감정과 반대로 해야 할 경우가 더 많다.
고객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도 솟구치는 화를 누르고 웃어야 하고
명절에 시댁에서 남편이 뒹굴 거리는 것을 보고 올라오는 짜증도 일단은 삭혀야 하고
세상이 내 편이 아닐 때, 외로움도 서러움도 숨기며 잘 사는 척해야 할 때도 있고
부모님을 두고 돌아 설 때 울컥하는 눈물도 애써 참아야 한다.
성장통을 겪으며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저절로 체득하게 되고 그렇게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약해 보이거나 약점(흠)이 잡히거나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약해 보이거나 흠이 잡히면 결국 나에게 걸림돌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인간관계, 사회생활 중에는 필연적으로 감정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감정 기복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어쩌면 조금은 무뎌져 가며 어른이 되는 거였다.
상처받아온 만큼 겹겹이 싸였을 보호막으로 단단해진 마음들을 생각하면 괜스레 짠하고 가엾게 느껴진다.
어른이라고 365일 매사에 의연하고 이성적일 순 없는 법.
위로가 필요할 땐 기대기도 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기도 하며 고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나 본 성숙한 어른들은 타인으로부터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때그때 잘 풀고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며 운동도 꾸준히 한다.
또한 자신의 감정 변화를 제3자에게 전가하지 않으며, 스스로 털고 일어나는 강한 멘털을 지니고 있다.
내 기분 나쁘다고 남에게 짜증을 내는 행동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니까.
이러한 어두운 감정들은 나와 조금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미주알고주알 깊이 생각하거나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감정과 그냥 잠시 떨어져 있다 보면 감정의 회오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표현한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내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조절하며, 그걸 잘 표현하는 건 어른이 되어도 늘 과제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다.
나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