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척의 어선이 지나갔을까.
치열한 현장의 고단함을 싣고 고고히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보니 내 무딘 사색들 마저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직업이 생존이 걸려있지만
숱한 천재지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직업은 생사가 맞닿아 있으니 더욱 아스라이 까마득하다.
나는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굿둑, 한 카페에 앉아 있다.
바다를 향해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온 강과
그런 강물을 조용히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바다의 거대한 만남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어쩌다 강은 바다로, 사람은 세상으로 흘러오게 됐는지, 그 감당해야 될 깊이를 짐작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들을 넘으며 긁힌 상처들은 겹겹이 쌓여 마음에 테를 만든다.
그럼에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감각들을 날 세우고 빠르게 달려간다.
그저 우리 안의 평화와 자유만을 추구하면서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가.
나는 고작 20cm도 안 되는 손바닥으로 무엇을 얼마나 움켜쥐려고 하는가.
아무리 바닷속에 진귀한 보물이 많다 한들
수면 위로 올라올 숨은 반드시 남기고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하듯 본인의 숨만큼만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인데.
남의 숨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종종 스스로 함정을 만든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강물이 아무리 급히 흐른다 한들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는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인과 주변환경의 변화는 흐르게 두면 그만이다.
본질과 가치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니, 중심을 잘 지키고 내면을 가꾸는 것이 의미가 있다.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욕심을 덜어내고 비교를 내려놓으면 스스로 상처낼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어느새 반갑고 너그러운 바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