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새벽, 침잠하고 있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면 나는 어김없이 책과 노트를 핀다.
어쩌면 글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태어남과 삶과 죽음까지 의문만 가득한 세상이지만,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어쩌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설득하고 나에게 나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 삶의 일부라 느껴지기도 한다.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 중 유전자로 보는 삶에 대한 여러 영상을 보면,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인문학자는 과학을 통해 삶에 의미가 없음을 보았고,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과학자는 인문학을 통해 삶에 의미가 있음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학, 유전학으로 보면 그냥 우리는 한 생명체로 지구에 잠시 머물러 가는 가벼운 존재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에 대해, 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것 아닐까.
잠시를 살아도 빛이 나는, 금방 사라질 작은 빛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빛을 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갑자기 이 세상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다줄 순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굳이 나를 갉아먹으며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애초에 질문이 잘 못 됐을 수도 있다.
'왜 내가 존재하는지,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하는 질문들을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로 바꾸고 답을 찾는 것이 더 발전적이고 희망적이다.
과거가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지금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
그저 나의 조각들을 열심히 모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쓴 글 한 편, 그날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 한 장, 아끼는 책과 영화와 음악, 나의 모든 걸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내면의 풍성함으로 내 존재를 가득 채우고 싶다.
그리하여 나의 주변이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따뜻해진다면,
그것으로 나는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느낄 것이다.
잠시를 살아도 빛이 나는, 금방 사라질 작은 빛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빛을 내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