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엄마랑 봄맞이 경주 나들이를 다녀왔다.
엄마가 해보고 싶다던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하고, 황리단길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 내 마음에도 따스한 봄이 오는 듯했다.
엄마는 꽃답다 못해 입춘에 움트는 새순 같은 나이에 나를 낳았다.
덕분에 나는 엄마아빠의 결혼식장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목도 못 가누는 채 삼촌 품에 안겨 응애응애 결혼을 축하했더랬다.
학교에 들어가서야 나의 부모님이 친구들 부모님보다 많이 젊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예쁘고 젊은 엄마가 학교에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뿌듯했던 것 같다.
엄마의 그 아까운 봄날들을 갉아먹고 있는 줄은 모르고.
새 생명이 생기자마자 아스라이 희미해졌을 소년소녀의 꿈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먹먹해진다.
세상에 일찍 나온 탓에 나는 부모님의 젊은 날의 많은 부분을 직접 보고 듣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온전히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들이 철이 덜 든 그 시기에 나는 빠르게 자라났고 굳이 몰라도 될 일, 몰랐어야 될 일들도 가감 없이 알게 됐다.
부모가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자식인 나도 빨리 철이 들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더욱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엄마아빠의 시계를 일찍이 눈치채버렸고,
그럼에도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성인이 다 되어 갈 때는 가뜩이나 동안인 엄마와 친구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엄마와 나는 친구같이 대화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으며 의지도 많이 했다.
지금도 서로 너무나 애틋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 그런지 요즘 새삼 선명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다.
이제는 철부지처럼 엄마에게 내 안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순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모든 걸 쉽게 털어놓을 순 없다.
얼마나 걱정을 할지, 얼마나 마음을 졸일지 알기 때문에.
그래도 엄마니까, 내 이기적인 슬픔도 다 품어 줄 사람은 엄마뿐이니까 다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엄마도 외할머니께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와 딸 사이에 말 못 할 얘기들이 있음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기필코 숨겨야 할 일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고 가슴에 묻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그 자리에 있지만, 이 세상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덜컥 서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아마 나에게 큰일일수록 부모님은 더욱 자세히 알 수 없겠지.
그럼에 부모는 자식 속에 들어앉은 알 수 없는 멍에가 내내 안쓰러울 것이고,
자식은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에 내내 마음 아파하겠지.
그래도 서로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큰 응원임을 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그 눈빛과 손길에서 무한한 위로를 느낀다.
세상에 진정으로 혼자 남게 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내 깊은 곳에 남아 나를 바로 세울 것이다.
내 모든 선택에 그들의 사랑과 지지가 담겨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기어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런대로 두련다.
이미 위로를 받고 있으므로.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만은 양껏 표현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부지런히 만들어 기록하고 아끼는 것 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