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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채록 Jul 11. 2023

짧은 이야기, 그래서 더 강렬한 이야기

BIFAN2023 10편의 단편영화 감상기

온라인상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온라인상영의 순기능도 분명 존재한다. 그 순기능 중 하나가 단편 상영이다. 영화제에서 네다섯 편씩 묶어 보여주는 상영방식은 사실 버거웠다. 마치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꾹꾹 눌러 넣는 것 같은 느낌이라. 또,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를 휘몰아치듯 보고 나면 내가 뭘 봤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간혹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상영이 병행됐고, 거리두기와 방역조치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일부 영화제들은 다시 오프라인 상영만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올해도 웨이브와 손잡고 온라인상영을 병행한 덕분에 원하는 장소에서 10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또, 오프라인 영화제에선 하기 힘들었던 개별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상들을 짧게나마 기록해보고자 한다.


*관람 순에 따라 언급, 기재되었음을 밝힌다.


1. 버거송 챌린지 (2023, 김민하, 21min)

금수저 친구를 한 표 차이로 이기고 반장선거에 당선된 아이가 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기 위해 버거송 챌린지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단편영화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는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빈부격차라는 사회의 부조리를 재치있게 그려냈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표현방식과 달리 메시지를 인물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해버린다. 그리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면서 순수하고, 천진하게 극을 매듭짓는 것 또한 너무 감상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2.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2022, 유준상, 26min)

고비사막으로의 여정을 담은 배우 유준상의 여행기. 속 시끄러울 때는 몸을 움직이라는 말처럼 그는 험난한 여정 속에 평온은 고요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친 오프로드 속에서 얻어진 그의 생각이 공감되면서도, 그의 말이 쉴새 없이 이어지다 보니 30분에 가까운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배우의 완급조절이 극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비울 부분은 비우고 채울 부분은 채웠다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좀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3.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 (2022, 한지원, 24min)

생각만 하면 뭐든지 가질 수 있는 마법을 가진 이가 그 능력을 잃은 후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답답한 현실과 계획하고 원하던 미래, 엄마가 있던 과거 이 세 시간대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답답함을 호소하는 인물만큼이나 보는 이 또한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다는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원하고 바라던 미래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물의 현실처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도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4. 투노하즈 (2021, 테츠카 마코토, 32min)

무용가 이즈미 카이와 신주쿠를 배경으로 ‘땅’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 도약과 해방에 대한 이미지를 몸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란한 카메라 워크에 안무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5.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2023, 권찬영, 27min)

어느 날, 전자레인지가 ‘지은’에게 말을 걸어온다. 전자레인지가 판타지 로맨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이를 동화처럼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전선을 붙잡고 전자레인지와 함께 왈츠를 추던 장면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전자레인지와 함께 하는 상상 신에선 전자레인지를 왜 사람으로 등장시킨 것일까?


6. 소년유랑 (2023, 이루리, 14min)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이미지와 사운드를 활용해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소설의 한 챕터를 시각화시켜 놓은 것 같은 이야기, 다음 챕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7. 차박 (2022, 정해심, 16min)

차박 컨텐츠를 만드는 유튜버 ‘세진’은 구독자와 함께 하는 차박 영상을 기획하고, 구독자인 ‘부미’와 함께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캠핑은 이내 악몽으로 변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구독자인 줄 알았던 ‘부미’가 돌변해 자신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과정까진 괜찮았다. 생존과 복수, 서로의 다른 목표를 가진 여성이 분투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부미’는 무엇 때문에 세진에게 접근해 복수를 감행하는 걸까가 궁금했는데, 복수의 이유는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왜?’라는 물음표가 남은 상황에서 영화는 무엇도 관객에게 남기지 않고, 휘발되어 사라진다.


8. 뜨끈한 뜨개질 (2023, 오지현, 10min)

사랑을 뜨개질이라는 행위로 표현한 단편영화.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었던 작품이었다.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연인이지만, 뜨개질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통해 사랑에 대한 관점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9. 침묵(2023, 배준원, 30min)

영화 <침묵>은 ‘김보라가 서사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의 서늘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녀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10. 내 귀가 되어줘 (2023, 장동윤, 21min)

배우 장동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전 여자친구의 아이를 떠맡게 된 청각장애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인물이나 영화를 만든 이 모두 자신의 수단 혹은 목표를 위해 타인을 도구화시킨다는 것이 느껴져서 그다지 썩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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