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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서의 희비

 -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9 화

 어느 날 본인의 몸에 어떤 종양이 만져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혹은 건강 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알 수가 없지만 그 참담함과 불안감은 수술실에서 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느껴왔다.     


 종양이 악성인지, 양성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실로 입실하셔서 수술 중 조직 검사를 통해 그 결과를 알 수 있는 경우의 환자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분들은 대부분 회복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회복실 의료진들에게 종양의 결과에 대해 묻는다. 


 수술중의 조직 검사는 조직을 얼려서 조직을 얕게 절단하여 현미경으로 보게 되는데 많은 경우가 일주일 정도 걸린 후 나오는 최종 결과와 일치하지만 아주 드물게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절단 과정에서 진단에 필요한 세포를 잃게 되어서인지 그 분야에 대한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잘 모르겠다. 더구나 회복실 의료진들은 수술 중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회복실에서 환자분에게 수술 중의 결과를 바로 알려드릴 수 없을 때 환자분들은 각성 과정에서도 계속 불안해하실 것이다.     

 

 종양이 악성이냐 양성이냐에 따라 한 환자의 남은 미래가 결정되기에 수술실에서 조직 검사가 나간 후 인터폰을 통해 결과를 알려주시는 해부 병리과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수술방의 의료진들은 모두 집중하게 된다. 결과가 양성이면 의료진들도 모두 기뻐하고 악성으로 나오면 같이 슬퍼하지만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의 마음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oo 님는 약 50대 후반이었는데 평소에 매우 건강하셨으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경련으로 병원에 내원하셨다. 환자의 뇌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뇌의 단층 촬영 검사에 종양이 발견되어 환자의 신경외과 수술이 예정되었다. 


 뇌에 생긴 종양은 그 종류가 양성이든 악성이든 개두술을 받아야 하기에 예후와 상관없이 큰 수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술이 시작되고 신경외과 의사가 종양에 접근하여 종양의 일부를 조직 검사로 의뢰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 검사의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는 기생충으로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기생충이 뇌유낭미충증(neurocysticercosis)였는지, 트리키넬라 스피랄리스 (trichinella spirallis)였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신경외과 수술은 보통 현미경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수술실에 있는 의료진들은 모두 그 기생충들을 잘 볼 수가 있었다. 살아있는 기생충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징그럽게 느껴지던지...     


 보통 이런 기생충들은 돼지고기를 회로 먹거나 잘 익혀 먹지 않은 경우에 걸리게 되는데 보호자에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자 보호자들이 너무도 기뻐하며 돼지 회를 평소 즐겨 드셨다고 하셨단다. 기생충이긴 하지만 종양처럼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어 수술적으로 그 부분을 제거하고 아마 기생충 약으로 나머지 치료를 받으셨을 것이다. 


 이런 환자들이 생선류나 고기를 회처럼 먹는 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하우스’라는 천재 해부 병리학자에 관한 미국 드라마가 한참 인기를 끌었는데 그 드라마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나온 적이 있다. 

 젊은 여성이 이 환자분처럼 경기를 반복적으로 일으켜 그레고리 하우스라는 의사는 종양으로 생각하고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였으나 반응이 없자 뇌혈관염으로 생각하고 스테로이드를 투약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자 하우스는 본인 밑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를 보내 환자 집안을 수색하게 하고 햄과 돼지고기가 냉장고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뇌유낭미촌충을 의심하게 되어 결국 기생충 약으로 치료하는 환자의 이야기였다.     


 암을 예상하였는데 기생충이나 다른 양성 질환으로 나오는 경우가 수술실에서 자주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러한 일들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암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간단한 수술로 생각했다가 수술 중 암으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통계로 확인해 본 바는 없으나 이런 경우가 가끔 있어서 암 수술이 많은 병원이다 보니 터가 안 좋아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며 우스갯소리로 수술실 식구들이 이야기하곤 한다. 터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암세포를 다른 병원보다 많이 접하시니 해부병리학과 선생님들이나 외과 파트에서 이에 대한 진단과 판단이 보다 정확하다는 병원 전체의 오래된 자부심이 있다고 하겠다.     

 

 30대 남성이 응급실에 복통, 발열 등으로 내원하여 급성 충수 돌기염으로 타 병원에서 진단되고 의뢰받아 응급 수술이 예정되었다. 급성 충수 돌기염은 워낙 간단한 수술이고 요즘에는 복강경으로 대부분 수술하기 때문에 더욱 간단해졌다고 하겠다. 


 당직 마취과 선생님과 전공의 모두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수술이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마취에 임했다. 그러나 복강경으로 본 우측 장은 단순한 급성 충수 돌기염이라고 하기에는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급성 충수돌기염은 단층 컴퓨터 촬영술에서 볼때도 심한 경우는 덩어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기에 종양 양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복강경을 통해 장들을 잘 박리하고 보니 단순한 충수 돌기염과 함께 장에서 기인한 종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외과 집도의는 수술 중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일단 보호자를 수술실로 입실시켜 직접 수술 시야를 보여 드리고 상황을 설명 드린다. 이 환자분의 경우에도 본격적인 수술을 하기 전 보호자를 입실시켜 수술 부위를 복강경을 통해 보여 드리려고 하였다. 


 아내인 것 같은 가냘픈 젊은 여성이 수술실에 들어오셨는데 임신 상태인 것 같아 왠지 이분에게 설명 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여성 특유의 직감이 들었다. 여자의 감성과 예감은 예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집도의가 복강경의 겸자로 종양 부위를 들어 올려 보호자에게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그 젊은 여성이 뒤로 넘어지며 쓰러지시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옆에 간호사가 가까이에 있어 얼른 그 여성을 뒤에서 받쳤기에 망정이지 아기나 산모에게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뻔하여 그 광경을 목격했던 수술실의 의료진들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호자를 얼른 부축하여 회복실 침대에 누이고 환자의 아버지를 수술실로 오시게 하여 설명해 드렸다.     


 수술은 우측 장부분 절제술로 복강경으로 진행되어 수술 부위나 수술 절개 부위가 급성 충수돌기염 보다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환자나 보호자나 염증과 함께 암까지 진단받았으니 얼마나 참담하고 황당했을까? 더구나 조만간 아빠가 될 환자분이 큰 수술을 받게 되었으니 그 환자분이나 아내 되시는 분의 심적 고통은 얼마나 클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환자가 우리 병원에 오기 전 다른 병원에서도 급성 충수돌기염으로 이미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단층 컴퓨터 촬영의 판독으로도 두 질환을 감별하기 어려웠을 상황이었기에 오진이라는 누명은 쓰지 않았으나 환자분이 수술 후 회복되어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셔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수술만으로 잘 회복되어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아가시리라 생각되고 오히려 그러한 일로 조기에 암이 발견되어 조기에 수술을 했기에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예측 가능한 일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는 늘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드물게 행운이라고 부르는 예측 못했던 좋은 일도 일어나겠지만 대부분은 안 좋은 일들이리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라면 담담한 태도로 그 일들을 견뎌낼 수 있기를 하고 다시 한 번 바래본다.        


 2008년 대기업의 비자금 문제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그 가격으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자그마치 350 억 원이라고 하는데 마이크 세코스키의 만화를 회화로 탈바꿈시킨 작품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나의 눈에는 만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이니 내 눈이 잘못된 것이리라. 행복하여 눈물을 흘릴 일이 많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의 경험으로도 거의 없었던 듯하다. 다만, 앞으로 수술실에서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이 이러한 행복한 눈물을 많이 흘리시길 기원한다.             




           

제목: Happy tears (행복한 눈물,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 1964,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단)  

  

 작가는 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티스트로 만화책의 한 장면을 옮겨 선명한 테두리과 형태를 메우는 수많은 점(벤데이닷이라 부름)으로 대중적인 만화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과거 대기업 비자금 문제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탄 작품으로 자그마치 수십억에 호가하는 작품이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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