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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올림픽 선수

 -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 8 화

  올해 초 아시안 게임 8강 진출을 위한 축구 경기가 있었는데 관람하면서 나오는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괴성(?)들이 아파트 단지 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작년에 우승까지 했던 우리나라가 허무하게 카타르라는 나라에 지는 것을 본 많은 국민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는 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기를 펼치자 남자들이 흥분하면 잘하는 심한 말들을 선수들에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운동 경기 관람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준다고 해도 못 하는 체질이다. 운동의 룰도 모르고 선수들은 더 모르고 남자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 어릴 때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으나 듣고 곧 까먹는 운동 경기 관람 치이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좋아하는데 관람은 도통 견딜 수가 없으니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 간다. 

 

 축구뿐 아니라 구기 종목, 빙상경기, 수영 등 종류를 불문하고 보는 것이 재미없어서 사실 한 번도 올림픽 경기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올림픽 시즌이나 월드컵 시즌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낄 수도 없어 경기 결과만 인터넷으로 조회하여 남들과 대화 시 왕따가 안 되려고 따로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아는 운동선수는 몇 년간 김연아 선수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아는 운동선수가 생겼는데 알게 된 경위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인지라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어느 날 정형외과 환자분인데 20대 초반이고 어깨에 종양으로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종양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환자가 쇼트트랙 선수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경기에 출전할 예정인 환자였는데 종양이 갑자기 발견되어 경기에 참석하는 것이 보류되었다고 하였다. 


 환자의 종양은 악성이었고 약 1, 2달 전부터 통증이 있었는데 올림픽에 출전하고자 진통제만 먹고 버티는 바람에 종양이 자라서 크기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30cm가 넘었던 것 같다. 종양이 크다 보니 정형외과 수술치 고는 매우 큰 수술이 되어 출혈도 심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마취를 담당했던 전문의 선생님이 이야기하기를 어깨며 다리며 근육량이 일반 환자의 배가 되어 몸에 신진대사가 매우 높다 보니 환자로부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매우 높고 어깨 근육들과 종양들이 폐를 압박하여 호흡 시 기도 내 압력도 매우 높았다고 하였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평소에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길래 이런 육체로 바뀌게 되는 건지 수많은 환자를 경험하는 우리 마취과 의사들에게도 생소한 증례였다. 더구나 경기 때문에 그 큰 종양을 참아내고 연습을 해왔다는 이야기에 환자의 어깨에서 제거한 종양의 크기를 보고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운동선수들은 평소에도 육체적 통증을 이겨내고 그 한계를 벗어나야만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매번 연습 때나 경기 중에 이런 통증에 익숙할 수 있어서 이런 통증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도 해 보았으나 인간적으로 정말 아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종료되고 환자가 회복실에 나와서 어떤 환자인가 궁금하여 회복실에 가서 보니 운동선수이고 근육량도 많다고 했으니 얼굴이 우락부락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편견을 깨고 예쁘장하게 생긴 총각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에서 벗어나 통증을 전혀 참지 못하고 아픔을 호소하며 몸부림치고 있어 이동 카에서 여차하면 낙상할 판이었다. 더구나 너무 아파서인지 예쁜 얼굴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며 통증에 대해 호소하고 있었다. 

 

 얼마 후 환자는 항암 치료를 받을 예정인지 반복적인 항암제 투여를 위한 주머니를 환자의 흉부 피하에 삽입하는 수술(chemoport insertion)을 받을 예정으로 수술실에 다시 들어왔다. 요즘에는 이 간단한 수술에도 환자의 요청 시에는 진정제와 진통제를 투여하며 마취과가 감시를 하는 ‘감시형 마취 관리 (monitored anesthetic care, MAC)를 시행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 국소 마취로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술 전 시술 부위를 모두 국소 마취를 시행하기 때문에 시술 후 통증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 종류의 수술이다. 그런데 이 환자는 이 시술을 받은 이후 회복실에 나와서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고 그 통증에 대한 불만을 이전과 같이 욕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보통 국소 마취 환자의 경우는 회복실에 있어도 마취과에서 관리하지 않고 해당 과에서 관리하지만 환자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내가 이 환자에게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매우 적은 용량의 진통제를 투여하자마자 환자는 갑자기 조용해지고 수면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분의 종양은 항암제 투여에도 잘 반응하지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이성 폐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 스케줄 예정에 이름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내가 마취를 담당하게 되어 내심 걱정되었다. 전처럼 그렇게 통증에 민감하고 예민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의외로 수술실에 입실하는 모습이 이전의 수술실에서 항상 인상을 쓰고 있던 그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모습이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그렇게 많았던 근육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마른 청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체중도 많이 줄었고 이전에 마취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전 수술을 받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도 너무도 변한 환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분이 마취에서 깨어났지만 예상과는 달리 수술 부위의 통증도 심하게 호소하지 않으셨다. 수술 부위 통증 중 흉부외과 수술 후 통증이 숨 쉴 때마다 아프기 때문에 가장 심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전의 간단한 수술의 통증도 견디지 못하던 환자분이 너무도 담담하게 통증을 견디는 모습이 신기했다.      


 환자분이 보이는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이길 바랬다. 그러고 나서도 한두 번 더 폐의 전이로 인해 수술실에 다시 입실하셔서 수술을 받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환자분이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첫 수술을 받은 후 2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소식을 접하고 나서, 평소에는 운동 경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스포츠 뉴스는 본 적이 없었지만, 문득 그 환자분이 선수로 활약했을 때 모습을 보고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어깨에 혹처럼 불룩하게 튀어나온 종양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스케이트를 손질하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종양이 작을 때 수술을 받았더라면 잘 회복되어 지금까지 선수로 활약했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 환자분의 이름이 빙상 연맹 비리라는 제목과 같이 뉴스에 나온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던 유명한 선수 중 한 분이 수년 동안 코치에게 폭행 및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고 이 사건이 대두되면서 이 배후에 빙상 연맹 안에서 강한 권력을 가진 모 교수가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었다. 또한, 그 교수가 이 환자분의 수술을 올림픽 뒤로 미루도록 종용한 인물이라는 환자분 어머니의 주장이 있었다고 보도되어 있었다.


 환자분 어머니의 주장은 작년에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심층 취재되고 보도된 적이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그 교수에게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체육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대표 선수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 직면해 있었다는 사실을 운동의 무식자인 나조차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진실이란 꼭 밝혀져야 하며 밝혀지리라 믿는다.    


 세계의 무대에 나서서 각종 경기에 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운동선수들. 당신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수많은 땀과 피로 얻은 많은 우승으로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있을 것이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ㅇㅇㅇ 선수님. 당신은 삶이라는 치열한 올림픽 경기의 진정한 우승자입니다.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제목: 극기 산수화 (김예슬 작품, 2017, 올림픽 문화유산 재단 소장)  

  

2018년 평창 올림픽 예술 포스터 공모전에서 뽑힌 8 작품 중의 하나로 작가가 화폭 위에서 줄넘기를 하면서 만들어낸 신체의 움직임과 그에 의해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화폭에 담았다. 스포츠의 극기 정신과 예술성의 혼연일체가 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을 품은 산수화 양식은 산맥과 능선으로 대표되는 강원 지역의 설산 풍경을 담고 있다. 출처: 서울 경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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