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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발과 할머니

 -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11 화

 한 살, 두 살 정도의 아이들이나 고양이, 개들이 흙, 머리카락, 페인트 등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고 영양분도 전혀 없는 물체를 습관적으로 삼키는 증상을 이식증이라고 부른다.   

      

 원인은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영양 결핍 혹은 심리적, 정신적 요인들을 들고 있다. 중국에서는 약 200개의 못을 삼킨 아이의 이야기도 보도된 적이 있고 일본에서도 아이의 몸에서 37개의 자석을 개복 수술을 통해 꺼낸 이야기도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뾰족한 못이나 칼을 삼켜 장 천공이 올 수도 있지만 자석도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자석 한 개가 아닌 두 개 이상 삼킨 경우에는 자석의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워낙 강하다 보니 장안에서도 서로가 당기면서 장이 뚫려 장 천공이 될 수 있다.         


 자석으로 인해 장폐색이 온 환자분을 본 적이 있는데 자석 몇 개가 환자의 뱃속에서 서로를 잡아당기느라 자석 사이의 장들이 꼬여 들어가서 장폐색이 생긴 것이었다. 아이가 아닌 성인 남성이었는데 심심해서 그냥 삼켜 본 것이라고 했다. 개복 수술을 해보니 자석들이 장점막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고 그 사이 꼬인 장들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상태가 안 좋아진 장의 여러 군데를 잘라내고 장 문합 수술을 하느라 수술 시간이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심해서 해본 장난치고는 그 대가가 너무도 컸었는데 수술 후 환자가 잘 회복되고 장 기능도 잘 돌아왔는지는 잘 모른다.         


 닭발이란 음식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접하게 된 음식이다. 젊었을 때는 모양새가 이상한 음식들은 잘 먹질 않는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닭발 먹을 생각을 하지 했는데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닭발집에서 만나자고 하여 그 친구 덕에 닭발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매운 음식은 나도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닭발이 어찌나 맵던지 난 쩔쩔매고 있는데 친구는 속속 뼈도 잘 바르고 별로 매워하지도 않고 잘 먹었다. 나는 뼈 발라내는 실력도 모자라 대충 껍질을 먹고 버리는 살이 태반이었다. 그 이후 뼈가 없는 닭발을 먹어 보았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맛있던지... 훈제 요리법으로 만들어서 인지 닭 냄새도 없고 발라 먹어야 할 뼈도 없고 쫄깃한 것이 생맥주와 궁합이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뼈 없는 닭발 마니아가 되고 말았다.

        

 여든 넘으신 할머니도 나처럼 닭발 마니아셨는지... 닭발 때문에 수술을 받게 되셨다. 할머니께서는 치아가 없으셨는데 그 와중에 닭발이 드시고 싶으셨는지 뼈 있는 닭발을 통째로 삼키셔서 그 닭발 때문에 대장에 천공이 생기고 말았다.


 수술실에 들어오신 할머니는 조그마한 체구에 하얀 얼굴, 하얀 카트 머리로 곱게 생기신 할머니셨는데 어쩌다가 이리 험한 일을 당하게 되셨는지 안타까웠다. 수술은 닭발을 제거하고 그 부위를 봉합하고 복막 안을 깨끗한 생리식염수로 씻어 내고 수술은 간단하게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에게 다음부터는 뼈 없는 닭발만 드시라고 꼭 권해드리고 싶었다.       


 몇 년 전 응급실에 위와 식도가 천공된 할머니의 수술이 예정된 적이 있었다. 할머니께서 락스를 한 통이나 드셔서 그 락스가 식도와 위를 부식시킨 것이라고 했다. 응급 수술을 할 예정인지라 환자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환자분의 의무 기록을 확인해 보니 가족 간의 어떤 불화가 있어 할머니께서 속상하신 나머지 집에 있는 그 많은 락스 한 통을 다 드신 것이었다. 


 화장실 찌든 때나 식당의 때를 청소할 때 락스를 사용해 봤지만 락스가 위와 식도에 천공을 일으킬 정도로 독한 건지는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락스에 손상된 부위가 단순하게 구멍이 난 것이 아니라 그 구멍의 주변 조직도 많이 손상되어 그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장을 식도와 연결하는 식도암이 생겼을 때 하는 수술이 예정되었다.         


 수술실에 오신 약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께서는 험한 일을 치르신 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곱고 얌전하게 생기셨었다. 무슨 집안의 사연이 할머니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나 잘 모르겠지만 직접 할머니를 뵈니 가슴이 아팠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인 '행복한 가정은 행복의 이유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수면제나 다른 약을 드셨으면 그냥 위세척 정도로 치료되고 후유증도 없었을 텐데 할머니께서 얼마나 급하고 속상하셨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락스를 선택하셨고 식도암에 걸리신 것처럼 남은 여생을 육체적 불편함과 같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근무시간에 주로 이루어지는 정규 수술이 아닌 응급 수술, 특히 야간 수술 중 엉뚱한 물건을 삼키거나 귀에 넣거나 코에 넣어 수술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경우를 드물게 보게 된다. 아이들이 동전이나 장난감을 삼키고 오는 경우도 있고 성인도 장난 삼아 이물질을 귀나 코에 넣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식도 쪽으로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기도나 후두 쪽으로 넘어가 막히면 병원에 올 시간도 없이 그 자리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심정지의 가장 많은 원인이 이물질로 인한 질식사이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어린아이들 주변의 물건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식도 입구나 인후 부위에 걸린 이물질은 수술 스케줄을 잡은 이비인후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아닌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마취를 유도 시 기관 내 삽관 전에 이 이물질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현재 근무하는 병원의 이전 병원은 야간 수술이 많은 병원이었는데 거기서 아기들 목에 걸린 동전을 여러 번 제거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술료를 마취과 의사가 받았어야겠지만 이런 경우 내가 했네 하며 챙기는 의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식증이나 이물질을 삼키는 이러한 행동들이 과거처럼 먹을 것이 없어 일어난 일들은 아닐 것이다. 심적인 요인들이 육체적 이상 행동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나라 경제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더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심적으로 많이 아프다.         


 우리나라가 자살률로 OECD 국가에서 1위라는 불명예가 주어질 정도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되었는데 그 주요 원인이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가들의 이식증이야 이와 관계가 없다고는 하겠지만 환자들의 이러한 심적인 병들에 그들의 경제적인 요인도 많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먹을 만한 것도 많이 버리는 상황이고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너무 없어 남들이 버린 것을 주워 먹고 있는 상황이다.         


 새벽 출근길에서 폐지를 줍고 계시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새벽길에 만나는 그분들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래도 열심히 당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사시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말씀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그 어르신들이 존경스럽지만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살아갈까? 가끔 생각해 본다. 아마 그분들처럼 열심히 살아갈 자신이 솔직히 없다. 지금도 나의 인생의 의미를 인생의 성공이 아닌 인생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두자고 말은 하지만 정말 극한 경제적 상황이나 신체적 상황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살아가면서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너무도 약한 존재이기도 하고 때로는 강한 존재임을 느낀다.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인간은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되고 살아갈 의미가 있을 때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의미가 지금은 너무도 강하기에 오늘도 새벽 출근길을 나섰다.    


 인간의 번뇌와 갈등을 주제로 한 셰익스피어의 글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그림의 주제였다고 한다. 그중 비극적인 글 '햄릿'의 여주인공인 오펠리아가 특히 자주 그려졌는데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펠리아'가 특히 아름다워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여인 역시 화가였으나 아편을 사용한 탓에 33살에 요절한 비운의 여인이었다. 명화 속 아름다운 오펠리아처럼 인간은 누구나 찬란한 순간이 있었고 또한 누구나 죽음이라는 순간을 피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각자가 아름다운 존재임을 잊지 말고 하늘이 주신 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살아가길.....        



                

제목: Ophelia (오펠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 작품, 1852, 런던 데이트 브리튼 미술관 소장)  

  

 비극적인 죽음을 묘사하였으나 오펠리아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표정마저 숭고한 느낌을 주어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사람과 자연을 충실히 그려낸 라파엘 전파의 수작으로 꼽힌다. 작가는 자연을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오펠리아의 목에 걸려있는 제비꽃의 꽃말은 젊은 날의 죽음이라고 하며 오른손 주변의 꽃인 붉은 양귀비와 아도니스의 꽃말 역시, 죽음이라고 한다.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은 욕조 안의 물 안에서 모델을 오랜 기간 서다가 실제로 독감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고 한다. 출처: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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