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13 화
성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예쁘고 젊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더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얼굴이 환하고 화려할수록, 젊을수록 갓난아기들도 좋아하니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조카 손녀나 손주들을 보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보다는 키 크고 늘씬한 삼촌이나 이모한테 더 호감을 표현한다. 아기들도 외모 지상주의 인지...
우리 병원 환자들의 경우 암 환자분들이 많아 어린 청소년들보다는 중장년, 노년층의 환자분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우리 병원의 정형외과만은 예외이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한때 정형외과 환자 병명의 90% 이상이 골육종(osteosarcoma, 약자로 OS라 함, 뼈에 생기는 암)이었고 이 암은 주로 10대에 많이 발병하고 남자아이들에서 더 호발 한다.
정형외과를 영어 약자로 OS(orthopedic surgery)라고 표기하는데 10년 전 만해도 정형외과 병동 환자 현황 칠판에 과명 OS, 진단명 OS로 대부분이 쓰여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그 층은 정형외과 병동보다는 소아 병동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그 소아 아이들이 다 키가 크고 늘씬한 장골들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은 대부분이 없고 큰 키에 얼굴들도 다 잘 생기고 예쁜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소위 모델 같은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골육종은 일 년에 약 100명 정도가 발병한다고 하는데 우리 병원에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골육종 치료계의 일인자셨던 과장님이 계셔서 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지금도 골육종 환자분들이 다른 병원보다는 많지만 대학병원마다 암센터가 생긴 이후 과거보다는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골육종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보통 일상생활 중에 갑자기 다리나 팔에 통증이 발생하여 병원에 가게 되는데 단순 방사선 사진만 봐도 골육종은 심각한 병처럼 보이기 때문에 보통 큰 병원으로 가시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정말 어떤 마음들을 안고 이 병원에 오게 될까?
어린 나이로는 1살 미만의 아기들도 있었다. 보통 소아들 경우 수술실 입구에서부터 마취과 의사와 같이 동행하게 되는데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면 그때까지 늠름했던 부모님들은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어머님들 대부분이 울먹이시고 아버님들은 어머니의 어깨를 지탱해주며 서로 눈시울을 붉힌다. 그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같이 눈물이 난다. 나도 벌게진 눈으로 '너무 걱정 마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아이를 따라 수술실로 들어가게 된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후에도 이런 골육종 아이들은 수십 번의 항암 치료를 받는 것 같다. 이외에도, 재발되어 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들어오거나 제거한 뼈 대신 넣은 기구들이 감염과 골절, 혹은 자라난 반대쪽 다리에 맞추는 일명 다리 늘리기 수술(ilizarov 수술) 등의 재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수술실에 입실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이유들로 적게는 서너 번, 많게는 10번 이상씩 수술을 받는 것을 보았다.
첫 수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일단 머리카락뿐 아니라 온몸의 털이 거의 없고 얼굴에 핏기도 사라진다. 마른 몸이 대부분이고 피부도 검게 변한 경우가 많고 눈은 더 커진 듯하며 혈관 주사를 놓아야 할 혈관들도 남아 있지가 않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나 같으면 이런 수술이 너무도 지긋지긋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밝고 맑고 착하고 의젓하기까지 하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 대전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동료의 아이가 골육종으로 진단되어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남편은 친구의 동료인 만큼 나에게 신경 좀 써달라고 부탁하여 수술 전날 아이의 병실을 찾아갔다.
아이는 14살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아이의 어머니는 나보다 한 20년은 어려 보이는 그야말로 젊디 젊은 엄마였다. 그리고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는 듯 마냥 밝기만 하기에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아이가 골육종이라고 하면 초상난 분위기인데... 그리고 아이 역시 약간은 지능이 떨어지는 듯한 말투와 어리광이 있어 혹시 발달 장애가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보통 이런 경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거예요.'라고 늘 상투적인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수술 당일 다른 수술방의 일을 마치고 조금 늦게 수술실 입구에 갔더니 그 아이가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강하게 거부하면서 수술실 입구부터 난리가 나 있었다. 아기들 같은 경우면 억지로 데리고 들어갈 수라도 있는데 14살이나 된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약간의 수면제를 투여하고 수술실로 입실시켰다. 수술은 별 무리 없이 끝났으나 문제는 다시 회복실에서 발생하였다. 아이가 의식을 회복하면서 또 아프고 불편하다고 이동카에서 울고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에게 다시 잠이 드는 진정 겸 수면제를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 아이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술 스케줄에 다시 그 아이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이번에도 지난번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겠지 하는 선입관에 일찍부터 수술실 입구에서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는데... 나는 다른 아이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 머리카락 없는 아이가 이번에는 의젓하고 말도 잘하고 어리광도 없었다. 다만 젊은 어머니의 평온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수술 후에도 통증도 잘 견디고 어찌나 어른스러워졌는지...
내가 매번 느끼는 골육종 질환을 가진 아이들은 모델같이 예쁜 외모에 질환으로 여러 가지 고통 들을 겪으면서 마음도 훌쩍 성장해 버린 어른스럽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한 아이도 못된 행동이나 버릇없는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없었다. 다만 오랜 병에 지친 아이들이 있었을 뿐..
내가 인턴 때 정형외과는 스케줄 상 4월에 돌았는데 그 당시 우리 병원 정형외과에 의료진이라고는 과장님 한 분과 나, 인턴뿐이었다. 기존에 계시던 과장님께서 대학병원으로 옮기시고 당시는 정형외과 전공의 확보가 안 된 상태였고 기존에는 인턴 두 명이 돌았는데 한 명이 공중 보건의라 5 월부터 근무인 선생님이셔서 나 혼자 정형외과를 돌게 되었다. 그러니 인턴 두 명이 할 일을 나 혼자 해야 했고 과장님도 둘이 해야 할 업무를 혼자 하고 계시는 형편이었다.
새벽부터 환자의 채혈을 하고 나면 과장님과 회진 돌고,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서 둘이서 수술을 하고 나면 오후 회진시간, 오후 회진 시간에는 둘이서 환자들의 수술 부위 드레싱을 일일이 하다 보니 회진이 끝나면 9시, 10시였다. 그 후에 나는 환자들 처방, 의무 기록, 방사선 필름 등 환자분들의 검사 결과를 챙겨야 했고 당직을 바꾸어 줄 인턴이 없는 관계로 한 달 동안 병원 밖을 나가지 못했다.
수술도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과장님과 둘이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지금은 4명이 수술 과정에 참여하는 수술을 과장님과 둘이서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과장님도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마도 과장님 진료 시절 중 가장 힘든 시절이셨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그래도 나를 지탱해 주던 힘은 골육종을 앓고 있던 그 예쁜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셨다.
하루 종일 정형외과 병동을 누비고 다니던 20 대 중반의 젊은 인턴 선생을 얼마나 좋아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는지... 그때 그 병동에서 받았던 인기와 사랑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었다. 그리고 그 힘든 진료 과정에서도 항상 꿋꿋하게 일하시고 우직하셨던 과장님에 대한 존경심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과장님께서는 환자분의 부모님들께서 주신 촌지를 그냥 받아 두셨다가 모두 각 환자분의 진료비 감면에 사용되도록 경리과에 다시 보내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병동에서 만났던 수많은 예쁜 아이 중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지만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중에 15살 정도 되었던 정말 백설 공주 같았던 ㅇㅇ이는 내가 마취과 전공의 2년 차 때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났다. 말기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이가 호흡이 어려워 내가 호흡관을 꼽아주러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다리의 암으로 결국 다리 전체를 절제하여 서혜부 이하로 약간의 다리만 남아 있었던 10살짜리 ㅇㅇ이. 수술 후 1주일째에 다리 절단 부위의 봉합한 수많은 실을 제거했어야 했는데... 실이 마르고 살을 파고 들어가 있어서 한 시간가량이나 아이의 남아 있는 다리에 머리를 처박고 실 제거(stich-out)를 하고 있을 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참아 주었다. 그 아이는 나중에 폐로도 암이 전이되어 그 어린 나이에 폐 수술을 수차례 받았다가 결국 호흡부전으로 이 세상을 떴다.
저 세상에 천국이 있을지 지옥이 있을지 나는 모르지만 이런 골육종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만큼은 천국에서 천사로 훨훨 날아 자유롭게 다니고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늘 병동에서 서로 만나 친구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던 그 들이 그곳에서도 다시 만나 외롭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2018년에 문학 동네에서 출판된 ‘여름, 스피드’라는 김봉곤 작가의 소설 표지는 헨리 스콧 튜크라는 영국 화가의 그림이다. 이 화가는 유독 미소년들의 나체를 많이 그렸는데 동성애 성향 때문이었다기보다는 배와 소년의 육체의 아름다움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파리에 머물면서 오스카 와일드와 같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과 친분이 많았던 듯 하지만 그의 성적인 특성보다는 신화를 그리는 미학에서 인간의 육체, 특히 남성의 육체를 가장 아름답게 여겼다는 면에서 소년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멱감는 사람들’의 소년들은 맑은 바다에서 아무런 스스럼없이 육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들은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제목: The Bathers (멱감는 사람들, 헨리 스콧 듀크, 1888, 리드 아트 갤러리 소장)
헨리 스콧 듀크는 배와 소년들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영국 출신 화가이다. 낭만적인 바닷가 풍경과 야외 누드 스케치가 허용되었던 어릴 때 자란 팰머스에서 배와 소년들의 누드가 담긴 그림을 많이 그렸으나 모델들과 성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