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취과 의사라서 1 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업무 행위가 무얼까? 아마도 환자에게 약제를 투여하는 것이리라.
간단한 수술에서는 수술 전 병실에서 삽입한 정맥로에 약제를 투여하지만 많은 경우 수술실에서 새로운 정맥로를 확보하여 수액, 혈액, 마취 약제, 항생제를 투여하기도 하고 수술 후 통증 관리를 위해서도 정맥로를 확보한다. 말하자면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것인데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게도 환자분이 마취된 후에 주사를 놓게 되니 환자분의 통증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주사 놓을 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병실이나 외래에서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주사를 놓아야 하는 간호사분들이나 채혈실 기사님들은 참으로 힘드실 것이다. 더구나 우리 병원 환자분들 다수가 항암제를 투여받은 분들이고 그러다 보니 혈관 주사를 많이 맞거나 혹은 항암제 자체가 혈관을 손상시키는지 의학적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분들은 주사를 놓을 혈관들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런 분들에게서 정맥로를 확보하는 병실 간호사분들의 기술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든다.
이런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도 의식 있는 환자분들에게 주사를 놓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마취 전 병동에서 확보한 정맥로가 좋지 않은 경우인데 마취에 사용하는 약제들이 어찌 보면 모두 위험한 약제들이니 정확히 정맥 안에 투여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정맥로에 약제를 투여할 수 없고 다시 정맥로를 확보해야 한다. 환자분에게 다시 주사를 놓아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리면 십중 팔고는 환자분들의 안색이 좋지 않다. 수술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아픈 주사를 또 맞아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싫으시겠는가?
그분들의 얼굴을 보다 보면 미안한 마음에서도 떠오르는 명화가 있다. 에드워드의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다. 환자분들의 얼굴이 그림 안의 인물처럼 무섭진 않지만 수술과 그 결과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과 더불어 앞으로 닥칠 통증에 대한 걱정에 쌓여 있으나 제대로 표현할 수 조차 없으니 답답한 그분들의 심적인 표정인 듯하다.
주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보톡스 주사나 미용 목적의 주사 마니아는 제외하고.. 나도 얼마 전 독감 예방 접종 주사를 맞았는데 접종 주간 동안 주사 맞는 것을 자꾸 미룬 것은 이 나이에도 주사는 싫어서였으리라...
만성질환이나 암과 같이 계속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인 경우, 수많은 주사를 맞아야 하니 환자분들이 주사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간호사님은 예쁜 간호사님이 아니라 주사를 한 번에, 안 아프게 놓은 간호사님이다.
환자분들 중에는 주사를 잘 참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유독 주사를 싫어하시거나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경우 의료진들이나 환자분들 모두 고생하게 된다. 혈관은 환자가 공포스러워할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로 더 숨어버리고 의료진들은 더 긴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평소에 기술이 좋았던 의료진도 실수하거나 실패하거나...
유독 주사를 무서워하는 주사 공포증 (needle phobia)나 뾰족한 바늘을 포함한 칼, 모서리, 손가락 끝같이 뾰족한 물체에 감정적 동요를 느끼는 선단 공포증(trypanophobia)이 있는 환자의 경우에 주사를 놓게 되는 경우 의료진과 환자들 모두 반쯤 정신이 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무한 도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노 홍철이란 연예인이 채혈 시 주사 공포증의 증상을 보여 많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최면 상태에서 이 연예인이 어린 시절 엄마가 돈가스를 사 준다고 말씀하시고는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다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장면이 나와 그 시간대의 그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매우 증가했다는 연관된 기사도 보았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자극적인 내용이 소재가 되어야 시청률도 증가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 소재가 남들에게는 웃음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좀 아이러니했다. 실제로 이러한 주사 공포증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환자들을 접하는 의료인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젊은 30대 초반의 환자가 간단한 치질 수술이 예정되어 척추 마취하에 수술을 받기로 되었다. 척추 마취의 경우 마취를 위해 환자가 옆으로 눕고 새우등처럼 자세를 취한 후에 마취과 의사가 환자의 척추뼈들 사이의 틈에 척추 마취 바늘을 꽂고 허리의 척수액 부분에 마취제를 투약하고 나면 5-10분 정도 지나 다리와 엉덩이 부분이 마취된다. 보통 환자를 옆으로 누이고 환자의 등 쪽에서 시술을 하게 되니 환자의 얼굴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에게 마취 주사 놓기 전 미리 주사로 인한 통증이 생길 수 있음을 미리 알리고 혹시 불편한 사항이 있는지 계속 환자에게 여쭙게 되는데 시술 중에 이 젊은 환자분의 대답이 계속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혈압과 심장 리듬을 보니 심장 박동수가 현저히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져 있었다. 급히 시술을 중단하고 환자를 바로 눕히니 환자의 핏기 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환자에게 산소를 투여하고 수액을 빠르게 주입하니 얼마 후 혈압과 심장 박동수가 정상화되었다. 환자의 의식도 명료해진 것 같아서 환자에게 말을 시키니 환자 말씀이 자신에게 선단 공포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이후부터 척추 마취 시에는 항상 환자분이 별문제가 없으신지 더 자주 물어보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우리 집의 아들들이 어렸을 때 주사 공포증이 있었다. 둘 다 예방접종 때마다 난리가 아니었기에 예방접종 때는 늘 남편과 같이 가야 했다. 주사를 맞을 때는 적어도 남편과 나, 그리고 간호사 두, 세분이 필요했다. 보통 주사 한 대 맞히는데 30분씩 걸렸으니 참으로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서 평소 다니는 동네 소아과에 가끔 빵을 사 들고 가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치과 치료 시에도 대부분 수면 마취 상태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방접종이나 치과 치료는 그래도 약과에 속했다.
당시 6 살인 큰 아이가 편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온 것이다. 수술을 위해서는 적어도 2, 3번 이상의 주사가 필요했다. 일단 수술 전 검사를 위해 채혈실에서 한 대, 수술 당일 금식이니 수액을 투여하기 위한 주사 한 대, 그리고 수술 전 처치를 위한 엉덩이 주사 한 대 정도였는데 그중 엉덩이 주사는 건너뛰더라도 수술을 위해서 주사 두 대는 필수였다. 그날은 남편이 바쁜 관계로 나 혼자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와서 진료를 보고 외래 채혈실에서 채혈을 해야 했다.
아이에게 한 번의 주사를 놓기 위해 채혈실에 있던 기사분들로도 모자라 어디서 모였는지 약 10명 이상 되는 분들이 아이의 몸 여기저기를 잡고 겨우 채혈을 했는데 약 1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검사실을 나오면서 애쓰신 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하였지만 그보다는 넋이 나간 듯 지쳐버린 아이가 더 안쓰러웠다.
수술 당일 수액주사를 맞아야 했기에 조금이라도 아이의 공포심을 줄여주기 위해 주사 놓기 1시간 전에 아이의 손등에 마취제 연고인 엠라 크림 (EMRA cream)을 발라놓고 테이프로 피부를 덮어 두었다. 막상 주사를 놓을 때는 아이도 자신의 피부가 마취된 걸 아는지 얌전히 주사를 맞았다. 수술실에 들어와서 마취되어 잠들 때까지 내가 꼭 붙어 있었고 내가 마취까지 하였기 때문에 다행히 아이는 별 정신적인 트라우마 없이 수술과 마취를 견뎌낼 수 있었다.
소아들에게 병원에서 입원하여 주사를 맞게 되는 경우 우리 아이에게 수액주사를 놓을 때처럼 미리 마취 연고를 발라 놓은 후에 주사를 놓게 되면 아이들도 훨씬 주사에 대한 공포심을 덜 느끼게 된다. 요즘에는 예방접종 주사도 가능한 주사 형태가 아니 패치 형태로 붙였다가 떼어내는 형태의 예방접종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한 번 잘못 겪게 된 주사에 대한 공포가 한 개인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주사 공포증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의료진들의 소임이라도 생각된다.
주사 공포증으로 나와 남편을 힘들게 했던 큰 아이는 이제 그 공포증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듯하다. 얼마 전에 축농증 수술을 위해 전신 마취할 때도 늠름히 견디고 과잉 치아로 국소마취 하에 발치 수술을 받을 때도 중간에 국소마취가 풀려 버렸는데 그걸 다 참아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보다도 겁이 없어져 먼 타국에서 부모도 없이 혼자 늠름히 공부하고 있다. 큰 아들아. 장하고 사랑한다!
제목: The scream (절규, 에드바르 뭉크, 1893,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
뭉크는 노르웨이 작가로 근대 말단의 퇴폐, 불안과 고독을 표현주의 그림으로 묘사한 화가이다. 핏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을 표현하고 있는 이 그림은 유화, 템페라, 파스텔, 크레용을 이용한 연작으로 유명한데 이중 유화와 템파라가 도난당한 적이 있다. 출처: Wiki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