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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거짓말

  -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서 2 화


 4년마다 각 병원이 혼란에 빠지는 기간이 있는데 소위 의료기관 인증 평가 기간 때이다. 의료기관 인증 평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많다. 병원마다 평가 기간에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평가 항목들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다가 평가 기간이 끝나면 소홀히 관리하므로 평가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증 평가의 목적은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기관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4년마다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한 평가 제도이지만 이 제도로 인해 의료기관들이 환자의 안전에 보다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의 예로 환자 확인 절차이다.


 인증 평가 전에는 수술 직전에 외과 팀, 마취과 팀, 간호사들이 모여 일일이 수술환자에게 수술 부위, 성명, 주민등록 번호 등을 자세하게 확인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런 식으로 일했던 그 시절에도 딱히 수술환자가 엉뚱한 곳을 수술받았던 사례가 기억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만 그런 시스템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이러한 환자 확인은 수술실 입구에서부터 이루어져서 수술실 입구에서 마취로 잠들기 전까지 수술환자들은 성명, 수술 부위, 주민 등록 번호 등의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받게 된다. 그 질문 중 마취과 적으로 중요한 질문이 치아 흔들림과 금식 여부이다.     


 치아 흔들림을 마취과에서 그렇게 열심히 환자에게 확인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전신마취의 경우 대부분 기관 내에 가는 관을 삽관하여 이 부분으로 환자에게 산소와 마취 가스를 투여한다. 이 관을 삽관할 때 환자의 입안으로 후두경이라는 기구를 넣으면서 삽입하게 된다. 이 후두경이 치아와 맞닿을 수가 있고 이 과정에서 치아가 많이 안 좋은 환자분의 경우에는 발치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는 환자의 치아 상태를 잘 파악해야 한다.


 발치된 치아가 폐로 흡인되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고 마취과와 관련한 의료 분쟁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이 치아 손상에 대한 분쟁이다. 치아 손상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미리 안 된 경우 환자가 마취 후에 본인의 치아 손상이나 발치에 대해 법적인 소송을 원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들이 환자의 치아에 대해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전신마취를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8시간 이상 금식해야 하는 것은 의료인이 아닌 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전신마취 시 금식해야 하는 이유는 전신마취 시 환자의 의식 소실부터 기관내 삽관사이 2-5분 동안에 환자에게 산소를 투여하는 방법은 마취과 의사가 직접 마스크를 통하여 환자에게 환기를 시키는 것으로, 이때 위에 내용물이 있게 되면 그 내용물이 폐로 넘어갈 수가 있기에 충분한 금식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환자들에게 치아와 금식 시간에 대해 여러 번 확인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와 확인 사항이 다른 경우가 가끔 있다. 흔들리는 치아가 있는 데도 귀찮아서, 창피하여, 혹은 있다고 하면 뭔가 진료받는 부분에서 불이익을 당하실까 두려워서, 등 다양한 이유로 거짓 정보를 주시는 경우다. 금식도 뭔가를 드시고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셨다고 거짓말을 하시는 경우가 있다. 깜박하셔서인지, 혹 수술이 취소될까 봐 두려워서인지 경우마다 다를 것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음식을 드시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금식이나 치아 흔들림 뿐 아니라 때로는 본인의 의학적 임상 정보에 대한 거짓된 내용을 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 숨이 찼다거나 가슴 두근거림 등 심폐 증상에 대해 환자분에게 문의하였을 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셨다. 혹 수술이 연기되거나 불이익이 걱정되어서인지 그 환자분의 의중을 알 수는 없다. 병원에는 의료진들의 진료 시 의무 사항도 있지만, 환자 역시 진료받으실 때 지켜야 의무 항목이 있는데 본인의 의학적 정보를 진실 되게 의료진에게 알려야 할 의무이다.     


 나는 항상 마취 직전에 환자분들의 치아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내 개인적인 경험상, 약 20%의 환자분들이 자신의 치아 상태에 대해 거짓 정보를 주셨던 것 같다. 환자분들이 그런 정보를 주시는 이유에는 그 중요도나 의미를 모르셔서 혹은 여러가지 사유가 있을 것으로 고의에 의한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란 것으로 여겨진다.


 약간 흔들리는 치아가 있거나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치아가 있는데도 환자들에게 치아 흔들림에 여쭈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괜찮아요" 하신다. 일반적으로 마취 시 치아 손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마취동의서 받을 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치아가 안 좋으신 분 중에 마취 전에 다시 설명하면 화를 내시면서 절대 빠지면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셨다. 특히 앞니의 경우 흔들리는 그 치아에 보철 치아를 끼우고 있거나 외관상 문제로 이 부분을 용납 안 하시니 너무 강력하게 거부하시는 환자분의 경우 수술이 연기된 적도 있었다.


 60대 남성분이셨는데 앞니 몇 개가 전체적으로 흔들려 손상 가능성을 말씀드렸더니 수술 전에 들은 적도 없고 절대 빠지면 안 된다며 수술 침대에 누웠던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시면서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환자분이 설득도 안 되어 하는 수 없이 외과 집도의에게 설명하고 수술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치과 치료 먼저 받기로 하고... 유독, 이런 분들의 경우 암 수술보다는 양성 종양이거나 간단한 수술을 앞둔 환자분들이 많았다.


 급한 수술이 아니니 수술이 취소되어도 환자분에게는 덜 미안함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암 수술을 받으시는 환자분들은 심적으로 내려놓음이 많아지시는지 수술실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의료진들에게 너그러우신데 암 수술이 아닌 경우 환자분들이 더 까탈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편견인지 모르겠다.    


 금식의 경우, 특히 어르신들이 금식인 걸 깜박하셔서 수술 당일 모닝 커피를 드신다던지 금식 중 배고프시니 침대 주변에 있던 음식을 드시고 오시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80대 할아버지셨는데 폐암 수술이 예정되었다. 마취 유도 시 유난히 배가 불룩하여 배가 나온 환자분인가 하고 생각했다. 마취 유도가 끝나고도 유독 배가 빵빵한 걸 본 흉부외과 집도의 선생님께서 마취 유도 시 마스크로 환기시킬 때 위에 공기를 많이 넣은 것 아니냐며 마취과 탓을 하셨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상태였다고 말씀드리고 위 배액관을 넣어드리겠다고 하고 삽입을 하였다. 웬걸.. 위 배액관을 통해 위 내용물을 흡인하니 노란 액체와 덩어리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닌가. 병실에 있는 할아버지의 며느리에게 알아보니 침대 옆에 있던 봉지의 귤들 몇 개가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수술 당일 아침에 며느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귤을 맛있게 드신 것이었다. 마취 유도 시 귤들이 폐로 넘어가 흡인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던지 '오, 마이 갓'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감사드렸다.    


 환자분들께서 간호사나 의사가 여쭈어보는 사항에 꼭 진실만을 말씀해 줄 것을 맹세하는 서약이 필요한 것 같다. 의료진에게 하는 거짓말은 환자분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거짓말이므로.    

 때로는 그림들도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속임수 그림을 ‘트롱 프뢰유’ 라고 부르는데 이런 그림들은 실제의 것처럼 혹은 속이려는 방향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명화 중에도 이러한 기법을 쓴 작품이 있는데 얀 반 에이크의 ‘세레 요한과 성모자 성상화’라는 그림은 정교한 터치에 무채색만 사용하여 마치 조각품이 액자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제목: 세례요한과 성모자 성상화 (얀 반 에이크 작품, 15 세기경, 루브르 박물관 소장)  

  

얀 반 에이크는 네덜란드 화가로 유럽 북부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며 주로 신앙을 담은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렸다. 이 작품은 조각처럼 보이도록 그린 그림으로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트롱프뢰유(속임수 그림)'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소년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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