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웃음 가스와 우유 주사

 -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서 3 화

 현대의 의학과 공학, 약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항암제, 항생제, 진통제, 수술 기구들이 개발되고 발명되어왔다. 그러나 마취과 입장에서 볼 때 의외로 마취 약제들은 종류가 다른 약제들의 종류에 비하면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


 마취 유도에 사용하는 약제, 근이완제, 흡입마취제, 진정제, 아편양 제제 등등 내가 전공의 때 사용하던 약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마취의 방법도 전신마취, 전 정맥 마취, 부위 마취 등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약제들을 잘 활용하여 균형적으로 안정적인 환자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마취 심도, 진통, 수술의 적절한 시야 확보 등의 마취의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 각 전문의의 능력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 상에 홍대 근처 클럽 앞에서 해피 풍선이란 제품을 약 3000원에 파는데 젊은이들이 이 풍선을 사려고 줄을 섰다는 내용을 보았다. 해피 풍선 안에 든 제품이 아산화 질소라는 우리가 마취 중에 많이 사용하는 가스이다. 이 가스는 다른 마취 가스와는 다르게 과일 향이 나고 마시고 나면 몽롱해지고 진통 효과 면에서도 탁월한 가스이기 때문에 파티 기분을 내는 데는 안성맞춤인 가스인 것은 마취과 의사가 볼 때도 인정하는 바이다.    


 많은 장점이 있는 마취 가스임에도 요즘 젊은 마취과 의사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구식 마취제가 되어가고 있다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수술들이 대부분 복강경이나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복강경이나 내시경을 사용하는 수술에서는 보통 이산화탄소를 수술 시야에 주입해서 내시경 하에서 수술 시야가 좋아지도록 하는 데 여기에 아산화질소라는 가스까지 사용하는 경우 공기 색전증이나 수술 후 구토, 목의 통증 등이 증가한다는 임상 논문들이 발표되면서 이런 수술에 사용을 꺼리게 되었다. 외과 수술들에서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들이 점차 비중이 늘다 보니 이 수술들에 아산화질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이 가스에 대한 마취과 입장에서의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겠다.     


 아산화 질소는 약 17세기에 발견되어 18세기부터 마취약제로 사용되어온 역사가 긴 흡입마취제이다. 이후에 사용했던 에테르나 할로탄, 엔플루란 이란 약제들은 더 이상 임상에서 사용되지 않으나 이 가스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사용하기 편한 점, 진통 효과가 우수한 점, 마취 중 환자에게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소아 치과의 외래에서도 소아들의 치과 치료 시에 아이들의 코에 이 아산화 질소를 주입하면 아이들에게 진정, 진통 효과가 나타나면서 치과 치료를 보다 수월하게 견딜 수 있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몇 번 이 가스 제제를 사용하여 치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이 가스는 산소에 비하여 폐포로 전달되는데 35배나 빠르다. 그러다 보니 산소보다 폐로 전달이 빨라 상대적인 저산소증을 일으키기 쉬운 무서운 가스이다.


 처음으로 이 가스를 이용한 치과 치료를 받으러 외래를 갈 때 온갖 간단한 응급상황 발생 시 사용되는 기구 (소아용 호흡관, 마스크, 후두경 등)를 챙겨 가지고 갔던 기억이 난다. 진정 치료 시에도 저산소증이나 저혈압 등 각종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라 겁이 나서였다. 그러나 그때 별문제 없이 아이의 치료가 잘 끝나 이후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갔던 것 같다.         


 아산화질소가 의료용 가스이기는 하지만 일상에서도 풍선의 공기 주입이나 휘핑크림의 가스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 규제가 강하지 않다가 파티 시 흥을 돋게 하기 위한 아편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이로 인한 사망이 발생하여 2017년도부터 흡입 목적, 환각 목적으로 사용 시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산화질소에 오래 노출되면 백혈구 감소, 빈혈, 혈소판 감소, 신경계 전달 장애와 같은 합병증이 생기고 특히 수술실에서 이 가스의 농도가 높게 되면 유산, 조기 분만, 기형과 같은 부작용이 수술실내 종사자에게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여성 근로자가 많은 수술실에서 사용을 꺼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하겠다.


 한번 사용하게 되면 그 즐거운 기분에 자꾸 갈망하게 되는 가스. 오죽 좋으면 영국의 낭만파 시인 로버트 사우디가 '만약에 천국에 기체가 있다면 이 환희의 기체일 것이다'라고 했을까?  이 시인의 말이 맞다. 아산화 질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죽음의 가스이니 당신을 천국( 혹은 지옥일까?)으로 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가스이다.  


 수년 전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마취제, 우유 주사라고 불리는 프로포폴.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사용했던 수많은 진정제 중에서 유독 프로포폴이 사망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프로포폴은 진정 단계에서 마취 단계로 넘어가기가 매우 쉬운 약제이기 때문으로 우리 의료진들은 이를 안전 영역(safety zone) 이 좁은 약제라고 말한다. 즉, 수면 상태에서 갑자기 마취 단계로 넘어가 버리니 이런 마취 단계에 익숙한 마취과 의사 입장에서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내시경 시술을 주로 하시는 내과 선생님들이 갑자기 환자가 마취 단계로 넘어가면 난감한 노릇이 된다. 그러므로 타과 선생님들께서 프로포폴을 쓰시는 것을 보면 마취과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긴 하다.


 다행히 프로포폴의 작용시간이 매우 짧아 그나마 환자분이 금방 깨니 망정이지 내가 개인 병원에 있는 의사라면 절대 프로포폴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위험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약제도 프로포폴이다. 물론 마취제로서. 프로포폴을 이용한 마취에서 각성될 때 환자에게 웰빙 느낌을 갖게 하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 있다. 그리고 다른 마취 약제들이 갖지 못한 항염증, 항암 효과가 있어 수술 중 암의 전이를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는 것 같다.       


 마취과에서는 프로포폴을 마취 목적, 진정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고 있지만 최근의 우유 주사라는 오명이 붙은 이유로 딱히 환자들에게 이 약제에 대해 환자분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전에는 환자분들에게 프로포폴로 마취를 할 경우 간 기능에도 좋고 좋은 약제로 마취해 드리는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말씀드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연예인들의 남용, 마이클 잭슨의 죽음, 의료진들의 중독에 대한 보도 들로 딱히 자랑할 만한 약이 되질 못한다. 그러나 프로포폴은 내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는 약이다.


 특히 유방암이나 폐암, 갑상선 암, 뇌종양, 척추 암 등과 같은 수술에 사용하면 마취과 의사도 사용하기 편하고 마취 후 환자분들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동료 의사 중에 한 분이 본인이 매년 남편의 직장에서 와이프의 건강 검진도 시행해주는데 (대기업은 역시 뭐가 다른가 보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위 내시경 시 프로포폴을 사용한 진정 상태에서 시술을  받는데 시술을 받고 나면 푹 자고 난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매년 건강 검진이 기다려진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고 프로포폴을 진료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의 사용을 꿈꾸시는 분들이 계실까 우려가 되는데... 프로포폴은 늘 사용하고 있는 마취과 의사도 사용할 때는 매우 조심하면서 쓰는 수면제라는 점을 꼭 잊지 마시길... 기분 좋으시려다 영원히 잠드실 수 있으니...    


 2018년은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생존해 있었다면 환갑이 되는 해였다. 그의 예술성과 음악의 위대함을 기념하고자 예술가 48명이 모여 영국 국립 초상 미술관에 ‘온 더 월’이라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작품 중 케힌데 와일리라는 미국 미술가가 1630년 루벤스의 필립 2세 초상화 안의 필립 2세를 마이클 잭슨으로 바꾼 작품을 그려 전시하였다. 전시장에는 헬륨 풍선에 매달린 신발과 같은 작품들도 전시되어 마이클 잭슨의 예술적 위대함 뿐 아니라 그의 사망과 관련한 마약 및 향정신성 약물의 오남용에 대한 풍자도 묘사되었다고 한다.     

 삶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마약과 향정신성 약물이라는 늪에 한번 빠지고 나면 헤어 나오기란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도 불가능하였다는 잊지 말자. 최근 방송에서 나오는 재벌가의 자녀나 방송인들의 마약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야말로 내가 잘 쓰는 단어 ‘어쩌지(어떻게 하지? 하는 경상도 사투리) ’가 떠오른다.( 참고로 나는 서울 토박이인데 같이 사는 사람이 경상도 사람이라 어느덧 경상도 말을 많이 쓰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제목: Equestrian portrait of king philip II(Michael Jackson)(필립 2세의 기마초상- 마이클 잭슨, 케힌데 와일리 작품, 2009, 런던 국립 초상화미술관 소장)    


 작가는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을 이용하여 도시의 흑인들이 명화의 한 장면에서 따온 자세를 취하는 독창적 작품 활동을 해왔다. 섬세한 디자인, 다채로운 색상, 벽지와 같은 느낌의 강력한 그래픽을 넣은 형식의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탄생 60주년 행사에서 전시된 작품 출처: 중앙일보    

이전 17화 위험한 거짓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