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거울로서 AI - 기록 평가의 윤리와 반사성
기록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 인간의 감정이 작동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역사철학자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는 역사를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의미 부여의 서사적 행위'로 보았습니다. 이때 우리가 사건을 '중요하다'라고 느끼는 감정적 반응은 그 의미 부여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하나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는 사실의 저장이 아니라 감정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심리학·뇌과학적으로 기억과 감정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집니다. 대뇌 변연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 아미그달라(amygdala)는 감정적으로 유의미한 경험을 장기 기억으로 강화합니다. 감정이 강한 경험일수록 더 오래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인지적 경향은 어떤 사건이나 행위를 평가하는 데서도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괴짜전 대화에서 한 참가자는 “감정이 많이 얽힌 기록일수록 더 중요하게 남기고 싶어진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참가자는 “쾌·불쾌의 감정 정도가 곧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감정적 판단과 결과를 찾아보기는 쉽습니다. 괴짜전 대화에서 모두가 공감한 사례는 문민정부 시절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사건이었죠. 건물 철거를 두고 한 쪽은 문화유산의 파괴라 비판했고, 다른 쪽은 식민 역사 상징의 청산이라 환호했습니다. '국민적 정서'에 따라 조선총독부 청사는 폭파되었죠. 같은 기록 대상이라도 감정의 스펙트럼에 따라 남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의 평가는 언제나 인간 중심적이며, 절대적이고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