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미융합소 Oct 21. 2020

왜 나는 그녀를 알지 못했는가

책 - 노터리어스 RBG를 읽고

 지난달 미국 연방 대법원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진보적 목소리를 내어 오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일명 노터리어스 RBG(이하 RBG))가 87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며,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뒤 28년째 연방 대법관 자리를 지켜온 미국의 역사적 위인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저는 그동안 그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저는 그녀의 이름을 그녀의 부고 기사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몰랐던 것에 비해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그녀를 추모했습니다. '이 사람 누군지?'. 그녀에 대한 각종 기사와 관심은 저의 궁금증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자연스레 그녀의 삶을 기록한 책 '노터리어스 RBG'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책은 생각보다 읽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법조인이라 그런지 각종 전문 용어와 어려운 단어가 많았습니다. 또한 단순히 그녀의 삶을 적은 책이 아니라, 그녀가 살던 시대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담겨있어 조금 산만했습니다. 그래도 RBG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녀가 어떤 목적과 가치관으로 살았는지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책은 실례를 들어가며 그 시대의 실상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합니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이로 인한 많은 제약들, 성별을 이유로 금지하는 많은 조항들은 과거 사람들이 성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억압과 피해를 받아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저로써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각종 성적 차별들이 불편하기를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도 저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이러한 불평등에 맞서 RBG가 사투를 벌인 시기가 1960-70년대라는 점입니다.


 이 시기 미국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반항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 운동들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 그라피티, 힙합 등 다양한 문화들이 생겨나며 현대 문화에 큰 이바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의 이런 사회 운동들은 알았지만, 이 시기에 일어난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무지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흑인 인권 운동, 그라피티, 힙합 등의 정보도 제가 굳이 노력해서 얻은 정보가 아닙니다. 이런 정보들은 살아오면서 학교나 미디어에서 너무 쉽게 접한 정보였습니다. 제가 놀란 점은 바로 이런 인종의 이슈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젠더 이슈보다 더욱 자주 다뤄져 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흑인 인권 또는 인종문제도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 중 외국에 살다 오지 않는 한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인종 다양성이 적고 민족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사실상 인종 이슈는 그렇게 큰 사회 이슈가 아닙니다. 그러나 젠더 문제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남녀 간의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의 피부와 직접 맞닿아 있는 매우 밀접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왜 제가 잘 접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젠더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제가 고백한 대로, 저는 RBG를 이번 그녀의 부고 기사와 함께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활동 역시 이번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사를 많이 읽지 않고 젠더 이슈에 민감하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일 수 있지만, 이는 분명 저의 무관심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젠더 이슈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작스레 거론되기 이전, 어떠한 젠더 문제 관련 정보도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나 매체에서 젠더 문제의 쟁점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젠더 문제에 대한 올바른 문제 인식이 부족했고, 이러한 문제가 최근에 발생한 하나의 현상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우리는 그동안 젠더 문제를 너무 소극적으로 다뤄 왔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젠더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때입니다. 제가 흑인 인권 운동, 그라피티, 힙합 등을 접한 것처럼 젠더 관련 문제도 삶 속에서 자연스레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젠더 문제와 관련된 영화와 서적은 이미 세계적으로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슈를 토론의 주제나 정책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매체로도 자주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문제와 더욱 친숙해지고 주변의 각종 현상들에 대해 인지하는 눈이 생길 때, 우리는 현 사회에 만연한 젠더 갈등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것입니다.   




  저는 지금껏 젠더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어떤 것이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책 노터리어스 RBG를 읽고 미국의 60-70년대 상황과 현재의 우리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나라가 60년도 전에 했던 일을 우리는 어째서 이제야 깨달은 걸까? 우리는 왜 지금껏 이러한 이슈에 무지했던 걸까? 저는 이것이 젠더 문제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지금껏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문화의 일부분으로 녹이고 사람들의 삶 속에 묻어나게 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 하는 것부터라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