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는 요즘 드는 생각.
연말이 다가옵니다. 정처 없이 걷다 낭떠러지에 도달하면 멈춰 뒤돌아보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세월을 흘려보내다 마주한 한 해의 끝자락은 저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작년의 나는 어땠지? 재작년의 나는?' 하나둘 지나온 지점을 생각해보면 세월이 눈 깜짝할 새 흐른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의 나, 재작년의 나 혹은 20대 초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어젯밤 꿈처럼 흐리었으면서도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시간이 빨리 지났다는 생각이 들면, 저는 조금 우울해집니다. 아껴 먹으려 싸매 놓은 사탕을 한 움큼 흘려버린 것처럼 아쉽고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이런 우울감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12월의 끝이 다가올수록 이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어느 한 시점의 내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이런 감정은 사라집니다. 올 한 해 혹은 한세월 동안 내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참 긴 시간을 건너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신입생 때의 설렘, 입대할 때의 기억,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던 나날들. 그때 일들을 생각해보면 참 옛날 일이다 싶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이를 먹지 않는 '짱구'처럼, 경험하는 나는 그대로지만 그간 쌓여온 회차들이 나의 세월을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하기에 한 시점의 나를 떠올려도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경험해 온 사건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와 옛날의 나 사이의 간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 사이의 머나먼 간극은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구분 지어 줍니다.
비록 지금 몸속에 숨어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밖에 서 안으로 바라본 나는 생각보다 두텁게 자란 굳은살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하기에 성장한 나를 지나온 날로 어림잡습니다.
올 해 끝자락.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는, 세월을 돌아보며 어느 만큼 자랐나 스스로를 다시 한번 제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