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물론 싫어할 때도 있습니다만, 좋아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혹 말을 하다 보면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을 해도 될까?’, ‘틀리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방어적으로 변한 사람은 생각을 명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언제든 문제사항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핑곗거리를 만들며 생각을 에둘러 말합니다.
핑곗거리를 담아서 에둘러 말하면 욕을 안 먹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뭐라던지 간에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한 것뿐이다'로 일관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식의 말하면 욕은 먹지 않을지 언정, 자신을 잃습니다.
우리는 경계가 뚜렷한 것만 기억합니다. 우리의 기억을 채우고 있는 건 내가 보아 왔던 형상뿐입니다. 물, 공기처럼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느끼기만 할 뿐 떠올리지 못합니다.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경계가 뚜렷한 것만 기억합니다.
명확히 말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의 기억 속에 남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두리뭉실한 이야기를 하면 공기처럼 형체가 없는 잔상으로만 기억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말해야 합니다. '나는 ㅇㅇ하는 것 같습니다'가 아닌 '나는 ㅇㅇ합니다'. '저는 ㅁㅁ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가 아닌 '저는 ㅁㅁ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물론, 명확히 말하는 건 두렵습니다. 명확히 말한다는 건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고, 경계가 생긴다는 건 반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형체를 가지기 위해선 반드시 반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몸의 겉과 속이 나뉘듯 생각에도 겉과 속이 나뉘어야 합니다. 이것은 편 가르기와 선긋기가 아닌, 자신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매번 글을 쓸 때면 저는 언제나 두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쩌지?', '뭣도 모르고 잘난 척한다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에도 제가 명확히(때로는 강하게) 글을 쓰는 건 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명확한 글을 써야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이 기억해주며,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명확히 말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만이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