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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미융합소 Jun 27. 2020

직업과 삶의 경계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일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생각하는 일은 다르겠지만 우리의 삶이 일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저는 간혹 일이란 게 참으로 짓궂지 않나 생각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은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은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런 걸 보면 일과 사람은 서로 애증 관계에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최근 대학 동기를 만났습니다. 오랜 고생 끝에 염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더군요. 그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그 친구가 매우 행복하고 재밌는 삶을 살고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말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너무 힘들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취업을 준비한다고 힘들어했는데 취업을 하고 나니 직장을 다닌다고 힘들다 하더군요. 그래도 밤낮없이 공부해야 했던 취준 때에 비해 지금은 야근할 때 빼면 끝난 쉬간에 쉴 수 있으니 좋다고 합니다.


 백수 삶을 살고 있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는 조금 의아하고 무서(?)웠습니다. 아니 그럼 언제 행복할 수 있는 거지? 취업을 위해 공부할 때도 힘들고 취업하고 나서도 힘들고. 결국 그런 힘든 삶 속에서 하루 이틀 휴식을 가질 때만 행복한 건가? 삶의 디폴트(Default) 값은 '힘듦'인 건가? 친구와의 만남 이후 '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게 됐습니다.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책은 소설가라는 직업이 되기 위한 지침서나 아니면 하루키가 생각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 등을 적은 논설문 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하루키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적은 자전 에세이에 가까웠습니다. 책에는 '소설가는 ~야 한다'라던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한다'는 이야기보다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태도를 유지해 왔는지에 대해 더욱 많이 적혀있었습니다. 즉 책은 ‘일’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루키의 ‘삶’ 이야기였습니다.


  하루키는 자기 자신을 소설가라고 표현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소설을 쓰는 행위를 상을 탄다거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일은 8등분으로 썰려 있는 케이크의 한 조각이 아니라 케이크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생크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과 일상은 구분되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섞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소설을 쓰는 것에 지루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작가들이 소설을 쓰다 보면 한 번 씩 겪는다던 ‘writer’s block’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다더군요. 이런 그의 삶의 방식은 어찌 보면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큰 힌트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키 책에 따르면 결국 일은 '인간이 무언가를 해나가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즉 이것의 목적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아니라 이것을 하는 것에 있죠. 하루키에게 있어 일은 자신이 바라는 보상 때문에 억지로 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일은 사전에 정의돼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입니다. 일의 목적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을 통해 얻는 보상에 있는 것이죠. 이렇다 보니 일을 하는 행동은 어찌 됐든 상관없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일이 힘들고 재미없어도 받게 될 보상을 위해 참고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보상을 위한 일은 당연히 보상을 받는 순간에만 만족감을 줍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보상은 삶에 있어서 매우 짧죠. 그렇다 보니 평소에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알기 힘듭니다. 이러니 일하는 시간은 무기력하고 퇴근한 후의 삶에서만 자신의 삶을 찾게 됩니다. 결국 제대로 된 자기의 삶을 ‘퇴근 후’의 시간에만 사는 것이죠. 하지만 하루키처럼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고 그것을 삶에 녹여내는 것. 그것이 일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글을 읽는 동안 ‘아니 누가 몰라서 그래? 그런 게 어려우니까 그렇잖아!’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도 분명 계실 겁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분명 이런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어보면 그것이 불가능한 삶은 아니구나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과 일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일평생의 행복을 위해 하루키와 같은 도전은 충분히 의미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하루가 퇴근 전과 퇴근 후로 나뉘시는 분이 계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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