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가지는 힘 - 토이스토리 1을 보고
최근 ‘픽사 이야기’ 책을 읽고 픽사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평소 영화에 별 관심이 없던 저는 아직 보지 않은 픽사 작품이 매우 많습니다. 픽사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토이스토리’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가끔 텔레비전이나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몇몇 장면을 본 적은 있지만 아직 제대로 집중해서 완전히 한편을 본 적은 없습니다. 마침 오늘 별다른 약속도 없고 딱히 할 것도 없던 터라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이자 지금의 픽사를 있게 해 준 ‘토이스토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혼자 본 영화지만 끝나고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정말이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고 사건의 긴박감이나 연출도 너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던 장난감에게서 이러한 감동과 동정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언제나 귀엽고 순수하게만 나오던 영화 속 아이들이 그렇게나 무서워 보이기는 정말 처음이었고 우디가 질투하고 버즈가 망연자실해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깊게 동감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한번 ‘스토리’가 가지는 힘에 대해 크게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현실에서 동물이나 식물에게서도 이러한 감동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하물며 생명도 없는 장난감들에게서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명도 없는 장난감들에게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이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장점을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글은 정보 전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팩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런 팩트에서 우리에게 딱딱한 정보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글에는 글쓴이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감정은 우리 속의 감정과 공명하여 우리에게 글쓴이라는 사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즉 스토리텔링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은 생명력을 느끼게 해 줍니다.(이와 관련해서는 저의 예전 글을 확인해 주세요) 우리가 영화의 주인공의 아픔에는 공감하지만 주변의 엑스트라의 아픔에는 무심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이 키운 선인장에게는 애정을 느끼지만 길에 자란 잡초들에게는 무심한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가 가진 스토리에서부터 그것의 생명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토이스토리’는 저에게 이러한 영역이 무생물들에게 조차 통용된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 이름처럼 펼쳐지는 ‘토이’들의 ‘스토리’는 장난감이 아이에 의해 내팽개쳐지고 개에게 물릴 때마다 제 인상을 찡그리게 했습니다. 그들이 다른 장난감에 의해 대체될까 봐 두려워하고 자기와 놀아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서 측은지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일상에 흔히 있는 별 것 아닌 일일지라도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으니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컴퓨터 속 내가 키우는 RPG 캐릭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등에게 진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생명이 없고 실존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들에게서 분명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스토리는 이처럼 우리에게 생물과 무생물도 뛰어넘는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해 줍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고 넘쳐나는 정보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계정들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력을 얻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는 넷상에 펼쳐지는 각종 작혹행위(악플, 마녀사냥, 혐오)들의 주된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스토리’의 가치는 더욱 귀중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동치는 시대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계속해서 빛나는 한 생명체로 남기 위해사는 우리도 저 장난감들처럼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