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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19. 2022

조형물과 건축, 그 사이

트라이보울, 인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건축은 숙명적으로 중력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중력을 극복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고대 유적지에 널브러져 있는 돌무더기들은 더 이상 중력을 이기지 못한 건축의 흔적이다. 그곳에 건축물이 있었다는 것을 그나마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단서는 아슬하게 중력을 버티고 있는 기둥과 땅에 바싹 붙어 있는 야외 원형 극장뿐이다.


지구의 중력은 위에서 아래로 작용한다. 그래서 위보다 아래가 더 넓은 형태의 건물이 하중을 받는데 안정적이다. 19세기 말 철근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건물이 높아질수록 위층 벽보다 아래층 벽이 더 두꺼웠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소한 건물의 위가 아래보다 넓지 않아야 왠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통념을 거스르는 건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형태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중력을 버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있는 트라이보울(Tri-Bowl)은 건물 이름처럼 세 개의 불룩한 바닥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인 건물들은 바닥이 평평한데 트라이보울은 천장이 평평하다. 그래서 이 건물은 뒤집어 놔야 할 것 같다. 특이한 형태의 트라이보울은 준공 직후 혁신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은 기업이나 제품의 광고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됐다.


트라이보울처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건물의 구조를 ‘역쉘(易Shell)구조’라고 한다. ‘역쉘’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조개껍데기가 뒤집혀 있다’라는 뜻으로 건물의 형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건물의 외피가 하중을 지지하는 뼈대(shell)가 된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달걀껍데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실제 트라이보울에는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가 없다. 첫째는 기둥이고 둘째는 창문이다. 벽체가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물에서 그 역할을 하는 기둥이 필요 없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하중을 지지하는 벽체를 뚫고 창문을 만들지 않았다. 기둥이 여러 개 있어야 건물이 안정적이듯이 역쉘 구조에서도 하중을 받는 벽들이 서로 맞물려 지탱해 주어야 안정적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기둥 안에 철근을 엮어 넣듯이 벽 안에 철선을 심었다.

트라이보울을 설계한 건축가는 서울시청 신청사의 개념설계를 맡았던 유걸이다. 평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추구해 온 유걸은 ‘물(Water) - 다이내믹 플라자(Dynamic Plaza) – 인텔리전트 플레이트(Intelligent Plate) - 하늘(Sky)’이 하나씩 포개져 층을 이루는 개념을 제안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 청라, 영종 국제도시를 상징하는 ‘세 개의 막사발’로 건물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럼 왜 유걸은 구현하기 까다로운 구조를 적용하여 특이한 형태의 건물을 설계했을까? 가장 먼저 건축가는 언덕과 골짜기가 많아 유려한 곡선이 두드러진 우리나라의 지형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획 초기에 넓은 천장을 전시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바닥에 변화를 주었다.


설계자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이유를 짐작해 보면, 첫 번째는 트라이보울의 위치다. 트라이보울은 ‘ㄱ’자 형태의 송도센트럴파크 가운데를 관통하는 수로가 송도워터프런트호수로 방향을 꺾는 지점에 있다. 주변 시설을 살펴보면, 트라이보울을 중심으로 북쪽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입주해 있는 G타워가 있고 동쪽에 공원이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송도 국제도시를 관통하는 가장 넓은 인천타워대로가 지나가고 아트센터인천도 보인다. 정리하면 트라이보울의 입지는 다양한 시설의 영역이 중첩되고 공원과 도시가 서로 전환되는 자리다. 당연히 눈에 띄는 건물이 들어서기 좋은 지점이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트라이보울의 역할이다. 건물은 송도센트럴파크 경계에 있다. 공원 옆에 도서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공공문화시설이 있는 걸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민들이 공공문화시설과 공원을 함께 이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공원녹지 조성과 관련된『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도시공원의 효용을 다하기 위한 공원시설 설치를 권장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수목원을 포함한 휴양시설과 도서관, 문화예술회관, 미술관과 같은 교양시설 등이 있다. 트라이보울도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므로 공원시설 중 하나인 교양시설이다.


문제는 공원 옆에 배치되는 건물의 형태다. 도서관, 문화예술회관, 미술관과 같은 건물은 대개 부피가 크다. 그리고 주변 도시를 향해 정면을 두고 공원을 등지고 배치된다. 그렇다 보니 공원과 교양시설 간의 행위를 서로 증폭시켜주기 위한 건물이 주변에서 공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동선이나 녹지의 흐름을 막는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 의도와 달리 교양시설이 공원 경계를 따라 공원과 주변의 연결을 막는 높은 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트라이보울은 세 개의 불룩한 부분만 땅과 접해 있다. 이론적으로는 대지 면적에서 건물의 바닥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건폐율)이 0에 가깝다는 얘기다. 건물의 바닥 면적이 최소화됨으로써 트라이보울은 다양한 성격의 주변 시설들과 공원 간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실제 시민들은 트라이보울 아래 설치된 수공간을 가로지르는 브리지를 통해 공원과 주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트여 있다.


트라이보울의 애초 용도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건립 목적도 2009년 송도에서 개최된 ‘인천세계도시축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해 3만 3천 명이 공연과 전시 관람을 위해 방문하는 건축물이자 송도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는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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