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문해력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 봤어.”
한동안 TV대신 거실 한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우는 ‘거실 서재화하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한때 나도 역시 그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연 관찰 책- 전래동화- 세계명작-역사 순으로 전집을 넣어주는 것이 좋고, 학교 들어가면 교과서 과목 관련 시리즈를 넣어주는 것이 좋대.”
육아까페와 육아서에서 말하는대로 추천 리스트를 손에 쥐고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였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다는 한 아이스크림 가게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이것저것 다 사 놓으면 내 아이만 뒤처지진 않을거라는’ 불안감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그려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이는 내가 넣어준 책들을 크게 즐기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도서관에서 몇 권씩 빌려 거실 바닥에 흩뿌려놓은 책들에 더 관심을 두었다.
손도 대지 않아, 지금도 ‘새 것’ 같은 상태로 아이 방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전집들도 있다. (마치 '새 것' 같은 상태로, 몇 년을 아이 방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헐 값에 당근으로 넘기면서 속이 쓰렸다.)
“OO아, 엄마가 새로 산 책들 좀 읽어볼래?” 라고 하면, 건성으로 '네' 대답하고는, 아무 책이나 꺼내어 스윽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꽂아 넣었다. 어떤 날은 표지만 훑고선 내 시선을 피해 슬며시 제자리에 다시 꽂아 두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 땡땡아, 왜 사놓은 책들을 읽지 않는 거야?”
이어진 아이의 말이 적지 않은 충격이다.
“엄마.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 마음이 별로 편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집에 있는 거니까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자꾸 미루게 돼요.”
전집을 한꺼번에 갖춰 두면, 아이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골라 꺼내볼 수 있고,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좋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가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려오신 책들은 몇 권 안 되니까 부담이 안 돼요. 그리고 엄마가 사신게 아니니까 안 읽어도 덜 미안해요. 그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것만 골라서 읽어도 되고요.”
아이에게는 벽면 가득히 차 있는 책들이 꼭 ‘To do list’ 처럼 느껴져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거다. 즐거워야 할 읽기가 ‘호기심’이 아닌 ‘의무’가 되어 버린 채.
아깝긴 했지만,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 눈높이와 비슷한 높이에 있는 책장 한 줄을 싹 비웠다. 그러고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몇 권만 한 칸에 꽂아 두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책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게 했다. 선택의 주도권을 아이에게도 주었다. 아이가 보면 좋겠다 싶은 아동 문학책들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항공기, 자동차, 신기술’ 관련 책들을 제가 몇 권 골라서 같이 빌리기도 했다.
아이가 직접 고른 책들과 제가 고른 책들 몇 권만 책장에 꽂아 두었더니, 아이는 즐겁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 이 아닌 ‘하고 싶은 일’ 이 된 책 읽기는 아이의 마음을 두드렸다.
대량으로 빽빽하게 책장을 채우고 있을 때는 그저 '배경' 에 지나지 않았던 책들이, 아이의 마음이 들어가고, 책장에 숨구멍이 생기자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실에 가득 꽂아놓은 책들은 장식품이 아니다. 책이 그저 ‘풍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주는 건 어떨까? 빼곡이 채워진 책이 우리 아이의 머릿 속도 빼곡하게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책장을 빼곡이 채우진 말자.
아이들의 마음에 ‘책’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려면, 책꽂이를 가득 채우는 대신 여백을 남겨두자. 그 빈 곳을 아이들이 생각으로 채울 수 있도록 말이다. 여백은 ‘선택해도 좋고, 그냥 두어도 괜찮은’ 자유의 공간이다. 그 틈 속에서 아이의 호기심은 고개를 들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