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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말종에 대하여

내가 니체 철학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한 가지에 대하여

by Arendtic Hannahism

인간 말종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삶을 견뎌낼 힘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는 주어진 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도 모른다.

태어나기를 정해진 사육장에서, 정해진 사료만 먹으며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이 치료인지, 감염인지도 모른 채 그저 생존을 위해 버티며 존재하던 이가. 그리고 그가, 삶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삶을 견디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이란 빈 서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랑, 삶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의 서판에 한 번도 새겨진 적이 없던 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가 배웠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시혜적 폭력뿐이었다. 그가 되뇌던 것은 살아남기를 바라는 소망뿐이었다.

그는 결국 '용재'에서 '전재'로 전락한다. 'Expired'라 적힌 냉동고 안에서 눈을 뜬 채,

혹은 감은 채 보관되며, 한 번도 현존재라 불린 적이 없다.


그의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쓸모 있는 자'와
'이미 폐기된 자' 사이, 그 어딘가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는 애초에 운명을 사랑할 힘을 배워본 적 없다.
그런 자들에게는 삶을 사랑하라는 요구는 실소를
자아내는 하찮은 폭력이다.


그러니 말종이라 부를 때,
우리가 겨누고 있는 것은 그들의 무능이 아니라
그 무능이 태어난 구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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