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첫 포스팅을 할 때만 해도 5월 5일 어린이날 현재, 경기도에 있는 친동생 집 게스트룸에서 격리생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건만. 코로나 시국인 올해는 버티고 살아남는 여정을 담은 브런치가 될 거라고 앞에서도 밝혔듯이 그리 되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일지 가끔 나도 궁금한데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의 여정에서 한두 번쯤은 잠시 남의 말을 듣고 결정을 주저했으면 어떨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어찌 되었건 4월 24일부로 나는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들어왔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반강제 봉쇄 국면이었던 호치민에서 한 달 여간 자가격리를 하면서 급격하게 진행된 나의 귀국행에 대해 살짝 풀어보고자 한다. '커리어'와 '일자리'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으나 '채용 컨설턴트'나 '헤드헌터'와 같은 빛깔 좋은 타이틀 말고 내실을 채우고자 내린 결정이기에 또 한 번의 맨땅에 헤딩의 여정들을 남겨볼 예정이다.
발단은 한창 재택근무 중이던 4월 16일 목요일. 매일 루틴이던 오전 화상 팀 미팅을 끝내고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본 카페 포스팅. 주말까지 모집 중인 IT 인재 양성 프로그램 (국비지원)이 눈에 확 띄었다. 한 일 년은 넘게 관심만 있다고 말만 하고 지난해에도 몇 달 코딩 프로그램 온라인 과정을 돈만 내놓고 몇 번 듣다가 흐지부지 되었는데 6개월 국비지원과정 지원 요건이 청년인 만 34세 이하 라는거. 그 전전날 밤새서 한국 총선 개표과정을 지켜보며 국뽕이 한껏 치솟아있는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중점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7개 영역의 청년지원사업이라니. 설렜다.
나 청년인가????
3월생, 뙇 만 34세가 되었기에 고로 지원자격 조건에 부합하는 마지막 해인 것이다.
좀 더 검색을 해보니. 해당 정부 사업이 한 군데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 지역 거점별로 스무여 개 남짓의 기관에서 7개 영역에 대한 교육+산학협력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6개월 과정을 5월부터 동시에 시작. 그날 하루는 전혀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자료 조사. 만약에 합격하게 된다면 굳이 서울에서 비싼 생활비를 커버해가며 방을 구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고향집에서 가까운 대구와 부산 과정으로 총 4개 과정을 지원 희망으로 압축함.
정말 오래간만에 완전 꽂혀서 설레는 마음으로 뭘 지원해보는 거였다. 결국 그날 밤을 새워 4개 과정에 모두 지원서를 제출 완료.
두둥 4/17일 금요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마음을 먹었다. 퇴사하기로.
If 어느 한 곳이라도 합격한다면 5월 중순 교육 시작에 조인하려면 해외 입국자 14일 자가격리 기간을 고려해야 했기에. 늦어도 24일에는 출국해야 한다. 새벽에 알아본 바론 마침 17일부터 베트남 저가항공사인 비엣젯이 월수금 호치민-인천행 운항을 재개했기에 국적기보다 3분의 1 가격으로 한국 갈 수 있는 하늘길도 열린 상황. 9시 반 팀 미팅 30분 전에 울 팀장한테 채팅으로 퇴사 의사를 밝히고 다음 주 수요일까지 퇴사 처리를 요청, 시국이 시국인 만큼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고 월요일 인수인계 및 노트북 등 물품 반납, 수요일 남은 급여 처리까지 완료. 순식간에 퇴사 마무리.
10여 년간 나만큼 이직 많이 한 사람도 드물 텐데 이렇게 급하게 퇴사처리를 진행한 것도 처음. 이 모든 게 역설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가능했다. 외국생활 정리하는 거 그전에도 몇 번 해봤던 터라 급박하게 돌아간 일주일 큰 무리 없이 지나갔다. 물론 한 달치 원룸 보증금은 당연히 날렸고, 락다운 대비해서 잔뜩 사놓은 먹을거리와 생필품 등은 지인들에게 나눔, 돌아오는 날 까지도 호치민의 모든 식당 및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했지 어디 가서 먹을 데도 없었기에 제대로 세이 굿바이는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4일의 격리기간도 베트남 한 달 격리 짬바가 있어서인지 이 작은 방에서 시간은 참 잘 간다. 이제 해제까지 3일 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
지원한 4개 과정이 만약에 다 안되더라도 이미 마음이 뜬 상황에서 나에게 시간을 조금 주고 시도해 보리라 맘먹었는데 꼭 가고 싶었던 과정은 아쉽게도 면접에서 떨어졌고 나머지 3개는 모두 다 되어 그중에 집과 가까운 곳으로 골라서 다음 주 인공지능 과정 교육 시작을 앞두고 있다. 수업만 들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절대 없고 6개월 시간 동안 길을 스스로 찾는 투자라고 여기면서 커리어 전환을 모색해볼 예정이다.
베트남을 떠난 이유를 말해 보라면 (뭐 마음이 붕 떴는데 더한 이유가 있겠냐만)
- 코로나 시국에 대처하는 베트남 방식이 나는 너무 불편했다. 옆방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그 유명한 호찌민 클러스터 중 한 곳인 부다바에 다녀갔다는 이유로 음성임에도 우리 건물이 봉쇄가 되어 2주 동안 밖에 못 나간 게 시초였지만. 외국인 신규 워크퍼밋도 중단되어 내 비자도 불안정한 점도 한몫. 여기에서 정이 다 떨어짐.
- 인재풀로 세상 잘난 사람들 (베트남인, 외국인) 대상으로 글로벌 기업들 포지션들 진행한다고는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그 업계에 계속 종사하고 싶다면 베트남에서는 갈 수 있는 가장 큰 회사 두 곳에 발을 담근 터라 타이틀은 화려한데 별로 남는 게 없는 듯. 내가 그 세상 잘난 사람들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ㅎ
-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줄다리기를 3년여간 지켜보며 내 내실을 다진다면 별로 겁날게 없어졌고 이제는 떠돌이 생활 그만 청산하고 더 늦기 전에 한국에 돌아갈 시점이라고 결심함.
다시 외국 나간다고 캐리어를 싼다면 말릴 사람들을 섭외해 놓았다. 돈과 피부 대신에 남들 평생 안 해볼 귀중한 경험들을 쌓은 시간들이라고 믿고 싶다. (내 소중한 피부는 동남아 6년에 이미 저세상으로....) 정말 원했던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 냈으니 제대로 파고드는 공부를 해볼 생각. 그러면 길이 나오겠지.
한 번씩 한국 들어올 때마다 느꼈던 이질감을 극복해 내는 게 첫 시작일 터. 정말 마음대로 살다가 돌아온 한국에서의 적응기 또한 한 꼭지씩 풀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