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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Sep 03. 2016

E.T.A 호프만의 세 평 다락방

밤베르크 3. - 예술가이고 싶었던 법률가

슈렉, 장화신은 고양이, 수고양이 '무르'

0.

헤겔과 호프만이 살았던 도시

                                                                                                                        

이 도시에 누가 살았었고...는 미각을 자극하는 맛집 외에 우를 머나먼 유럽으로 찾아가게 만드는 주된 동기가 된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바이마르의 괴테,  본의 베토벤 같은 경우! 그리고 여기 밤베르크에도 우리도 잘 알 것 같은 인물 둘이 족적을 남겼다. 한 명은 독일 철학자 헤겔이고, 다른 한 명은 E.T.A 호프만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명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바로 이 E.T.A.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탄생했다. 영화'슈렉 2'의 뒤를 이어 2011년에 나온 '장화신은 고양이'는 루드비히 티이크의 작품이지만, 호프만의 고양이도 장화신고 사색하는 수고양이로 '무르' 라고 한다. ~~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지만..... 저 글자 'HEGEL'!! 가장 유명한 학센집 앞에


사실 밤베르크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돼지다리오븐구이, 일명 슈바인학센' 파는 레스토랑 밖 의자에서 지친다리를 뻗고 쉬고 있다가 눈을 들면 저 붉은 색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저 철자 'HEGEL', 지친다리와 탐색의 눈길이 합작하여 발견한 헤겔이다.


이곳에서 정신현상학을 완성한 헤겔


"이 집에서 1807년부터 1808년까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겔이 밤베르크 신문의 편집장으로 살았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대작 '정신현상학'을 완성했다." 는 글귀!

                                                                                                                                                                           

1.

이곳, 낭만적인 사랑꾼을 찾아가는 지독히 낭만적인 길


1년 남짓 이곳에 살았던 헤겔보다는, 밤베르크 정치를 비꼬고 타락한 밤베르크의 문화계를 풍자로 일갈했던 '도깨비 호프만' 혹은 '밤의 호프만'이 밤베르크에 살았었던 가장 유명한 사람에 어울릴 것 같다. 13살의 율리아에게 미친듯이 사랑에 빠졌던 33살의 유부남 호프만! 구시가지의 관광루트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지만 '호프만 박물관'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작은 베니스'의 운하를 따라가는 낭만가도다.



                                      

'작은 베니스' 답게 좁은 운하길, 맑은 물길, 진한 초록, 그림같은 집들, 완벽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곳, 그 기억을 보존하는 밤베르크



연극이 상영되는 밤베르크 E.T.A. 호프만극장과 그 앞의 호프만 동상


작은 체구, 검은 연미복, 옆구리에 낀 악보, 굽은 등... 상상했던 호프만의 이미지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그런 동상.. 저만한 키, 저 정도의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저렇게 악보를 끼고 비 오는 날 밤 밤베르크 거리를 미친 듯 돌아다녔을 거야! 고양이가 뒤따라 다녔겠지!... 턱 밑을 만져주면 갸르릉거리며.... "너는 실패한 나와는 다르게 참 자유롭고 용감하구나...." 아마 이렇게 탄생했을 그의 이야기 <독학한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과 간간이 끼워 넣은 휴지 조각에 끄적거린 성가대 지휘자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인 전기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 (1819/1821)>


검은색 동상, 거친 표면, 구깃구깃한 악보첩, 고양이를 안고 있는 거친 손마디까지 모두 완벽!


어깨에 올라 탄 검은 고양이 '무르', 독일어 동사 '무렌 murren'은 '우르릉 우르릉, 꾸르륵 꾸르륵,  고양이로 따지면 '갸릉갸릉거린다'는 뜻으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숫코양이 '갸릉이' 정도 될 것이다.


어깨에 올라 탄 고양이,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와 낸시 랭도 이 모티브를 매혹적으로 봤던 것일까..



오페라 지휘자를 꿈꾸던 법률가


2.

생존과 꿈의 기로에서


예술가로 인정받으려 했으나 불운(?)하게도 그는 뛰어난 법률가였고 심지어(!) 유능했던 국가공무원이었다. 그러나 격동의 시기! 나폴레옹의 신성로마제국 침략으로 프로이센 국가공무원이었던 호프만은 공무원직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길이라 생각하던 음악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음악가로서의 삶을 위해 고향인 저 북쪽 중의 북쪽이며 칸트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Koenigsberg (지금은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트 Kalliningrad)에서 남쪽 중의 남쪽인 밤베르크에 오게 된다. 그 해가 바로 1808년이다. 이 해를 기억하며 밤베르크는 이 건물 담벼락에 "호프만은 1808년 9월 1일 밤베르크로 왔다"고 적어놓았다.




내  사랑 울리아!

3.

계략, 빈곤..그러나 사랑


성가대지휘자로 처음 서게 된 연단에서 오케스트라는 박자를 틀리고, 성악가의 음정은 빗나가고...잘 짜인 이 계략에 호프만은 직장을 잃고 가난 속에 처절하게 좌절하지만 ....노래 과외수업을 받던 13살짜리 어린 율리아를 격렬하게 사랑하게 된다. 20살 연상의 유부남, 사회적 지위도 보잘것없던 그에게 이 사랑은 실현될수 없었다. 이 플라토닉하지 않았던 사랑을 눈치 챈 그녀의 부모가 부유한 함부르크 상인에게 그녀를 결혼시켜 버린 것이다. 호프만의 문학과 음악 속의 이상적  여인, 그의 정신적인 뮤사이! ~

                                              


4.

별걸 다 기억하는 도시!~


호프만이 미친듯이 사랑했던, 사랑을 갈구했던 율리아가 살던 집과 그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


이 집 "금사자 표시가 있는 집"에 1812년 7월 20일까지 율리아 마르크가 거주함. E.T.A. 호프만의 제자였고, 그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근원상



호프만을 상징하는 사색하는 고양이 '무르'가 펜대를 쥐고 글을 쓰고 있는 형상, 이것이 '호프만 박물관'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호프만 박물관


박물관 문을 밀고 들어서면 저 반대편에 호프만의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그 곳에서 쳐다 본 천정, 무서운 흑백의 호프만이 집 천정을 온통 뒤덮고 있다. 박물관은 첫인상을 결정하는 입구부터 문의 손잡이, 정원, 정원으로 나가는 문, 정원의 조경과 조각, 집 안의 전시내용과 전시 품목을 여러 해에 걸쳐 수정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방문객의 국적을 조사하고 새로 나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등...매체의 변화가 기억의 보존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려고 애쓰며, 이 과거의 인물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박물관 입구 천정화, 정원에서 바라본 모습


이 문은 <마법의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다. 문의 장식인 '장미와 뱀'은 호프만의 작품 '세라피온의 형제들'에서 따온 모티브, 격자문 너머로 보이는 하얀 동상은 호프만에 대한 오마쥬~



<마법의 정원>은 호프만의 작품 속 모티브로 섬세하게 가꿔져 있다.




연못 옆 동상은 '운디네 ( 물의 요정 닉세라고도 불린다)'인데, 호프만의 오페라 <운디네  Undine>와 연관이 있다.


물의 요정 운디네와 연못


문고리가 어쩜 이렇게 예술적인지...



이 정원을 지나... 전시실에 들어서면 '국카스텐뷔네 Guckkastenbuehe'가 보인다 '요지경무대 Guckkastenbuehne'에는 독일어 동사인 'gucken'이 들어 있는데, 이 동사는 '보다 sehen'의 일상어다. 즉 안에 조명을 켜 놓고 그림이 그려져 있는 표면이 빙빙 돌아가서 마치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것같은 상자가 바로 'Guckkasten 보는 상자, 요지경'. 호프만의 작품내용을 형상화 해 놓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호프만과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좀 기괴하지만 그의 눈동자 속을 쳐다보는 것이다. 저 파인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물의 요정 '운디네'가 있다. 그의 사랑 율리아 마르크일지도...



이제 그가 살던 곳,

4층, 가장 높은 곳, 다락방, 그곳으로 가려면 좁은 박물관 전시실을 거쳐 원형 철제 계단을 기듯이 올라가야 한다. 이때 만나게 되는 다락방, 몇 사람이 서면 이미 꽉 찬듯한 정말  좁은 공간! 사랑과 일 모두 실패한 호프만이 살았던 곳이다.


호프만의 침대
호프만의 피아노, 왼쪽으로는 침대가 오른쪽으로는 이렇게 피아노가 놓여 있다.


너무 좁아 카메라 앵글에 나눠 담아야 하는 작은 다락방. 13살 소녀에게 품었던 욕망, 험로였던 음악가의  삶, 이런 경험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그의 작품들은 기괴하면서도 야릇하고 한 편의 발레처럼 우아하면서도 낭만적이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애잔하고 슬픈..., 하지만 호프만의 뮤사이 그녀(!)가 어떤 여자였는지 정말 궁금하게 만드는 밤베르크~ ~~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2.

법률가, 작곡가, 성가대지휘자, 음악비평가, 소묘가, 캐리커쳐 화가......그러나 그는 사랑에 빠진 음악가!!


문학가로서의 호프만과 그의 작품  '모래사나이'나 '호두까기 인형' '브람빌라 공주' '스뀌데리 양' '아름다운 발레 이야기' '악마의 묘약'도 매혹적이지만 음악가로서의 호프만도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모짜르를 숭배했던 호프만은 자신의 이름에 모짜르트의 이름 한 자를 넣었다. 아마데우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Léo Delibes가 '모래사나이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발레 'Léo Delibes', 로베르트 슈만이 만든 '크라이슬러리아나 Kreisleriana', 파울 힌데미트가 호프만의 '스쿠데리 부인'을 토대로 만든 오페라 '카딜락 Cardillac'은 호프만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호프만은 10개의 기악곡, 8개의 성악곡 등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대성당앞

글 그림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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