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는 자주가 아니더라도 간혹 엄마와 여행을 다녔다.
우리는 맛있다는 함박스테이크 레스토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생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고 식전 빵을 먹으면 아, 교토였지
여행 온 게 실감 났다.
운치 있는 강 앞 카페에서 고소한 라테를 마실 때
집을 떠나는 고됨이 사르르 녹았고 앞으로의 계획이 뭐든 상관없다 느꼈다.
커피 하나로도 지나가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고
지금의 감정과 마음에 충실하니 명상이 따로 없었다.
엄마와 며칠 전 크게 말다툼을 했다.
이제는 엄마와의 격한 대화를 다툼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내 나이가 먹었다.
엄마는 이제 엄마 하기가 싫다고 하셨다.
엄마를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괜찮은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하나도 이해하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자만했던 것이 엄마에게는 더 상처가 되었다.
나 자신은 누구와도 같지 않고 가능한 원하는 대로 살겠다 고집을 부렸는데
엄마한테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만 기대하고 강요했다.
머리가 컸다고 좀 많이 건방졌다.
저 따뜻한 라테 한 모금이 많이 생각났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단 둘을 의지하며 3일을 함께했다.
나의 엄마는 그때 엄마였고 친구였고 사랑이었고 등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