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가장 자신 없는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제가 가장 잘하는 건 ‘기억’이에요. 천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가 갖고 있는 능력 중 고르라면 저는 왠만한 것 모두 기억을 잘 해요. 사실, 의견, 느낌, 위치, 절차 등 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너무너무 많죠. 전 특정 상황의 장면 장면들을 사진 찍듯이 저장해두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하나를 떠올려야 하면 그것이 있던 상황과 주위 연관된 것들이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와요. 당시의 내 처지와 마음 같은 감정적인 것도 같이요.
수 많이 봐 왔던 시험의 경험도 기억의 요령을 터득하는데 도움을 주었어요. 각각을 기억하고, 연결해 기억하고, 함께 기억하고, 다시 나눠서 기억하고. 이렇게 구획을 나누고 합치고, 다시 구획을 나누고 합치면서 외우다 보면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한 듯, 잘 섞인 하나의 큰 기억 덩어리를 얻게 돼요.
반면 제가 제일 자신 없는 것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수한 부끄러운 경험, 제 자신이 굉장히 수치스러웠던 일, 나를 화나게 한 누구, 용서할 수 없는 개자식 등 전 무언가를 잊는 일이 참 어려워요. 좋은 일은 오래 간직하고 싶지만 달갑지 않은 일도 잊으려 노력하면 더 생각이 나니 뭐든 기억거리가 많은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거 보면 어떤 일이든 마냥 좋은 것만도, 마냥 안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