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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Dec 27. 2020

낭만적인 모습

당신이 지금까지 봐온 장면  가장 ‘낭만적인 모습 무엇인가요?


 아이가 돌이 조금 안된 시점, 하루 종일 기저귀 갈고 이유식 챙기고 가재수건 빨고 앉을  없이 머리는 산발이 되어 멍한 정신으로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기어오는 아이에게 물을 아기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다가 한번 빨대컵에 담아서 줘볼까, 생각이 들어 깨끗이 닦고 소독해놓은 빨대컵에 물을 담아 주었죠. 빨대를 물기만 하고 있다가 잘근잘근 씹어보기도 하고 호록, 하며 힘을 주다가 다시 물이 쪼르르 내려가기를 여러번.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물은 여기저기  새어나오고 바닥에 똑똑 떨어지는데 아가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칭얼대지 않고 계속해서 빨대를 탐색하고 있는  같았어요.
그러다가 물이 호로록 하며 위로 빠르게 올라와 꿀꺽 아가가 삼키던 순간, 아가도 깜짝 저도 깜짝.  모습이 너무 너무 귀엽고 대견한거에요.
입으로 무언가를 빨아 올리는  정도는 너무 당연한 거라고, 노력이 필요한 건지 생각조차 못했는데
아기를 키우면서  당연한 것들이  시도와 노력과 연습과 반복으로 이루어진거라 생각하니 왠지  사람을 낳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기쁜 일인지 몸으로 느껴지는 거에요.
꺄악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치고 아가 볼에 살을 부비는  순간,
 대단하고 대견한 순간이 제가 살면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었어요.
살면서  비교적 자신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편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말고 다른 존재의 비중이  인생의 파이를 추월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그런데 저를 가장 힘들게 하고 가장 마음 아프게 하고 살을 에이는  쓰라리게도 하는  작은 인간이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도 대단하게도 사랑하게도 만드는지요. 왠지 낭만이라는 단어에는 ‘노력보다 ‘우연이라는 느낌이 가득한  같아요. 아이와 함께 마주하던  우연의 순간이 모두 낭만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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