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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16. 2017

혼자 남은 밤


저녁 산책을 하기 참 좋은 때이다.

이사 온 다음날, 짐의 먼지와 새 건물의 광물냄새에 지친 터라 보이는 옷에 몸을 끼우고 운동화를 서둘러 신고 산책을 나왔다. 터널을 통과하려는 입구에서 자동차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속도를 내고 있었고, 터널 시작 지점의 소리 공명이 왕왕 사람을 잡아 먹을 듯 하였다. 그런데 터널 옆 길로 나있는 오르막길을 조금씩 걷다보니 순간 나는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택가의 정적 한 가운데에 위치했다. 


고양이 한 두마리가 어슬렁 거리는 공원을 지나니 나무와 풀, 꽃들이 앞 길을 내어주는 곳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순간 유에서 무를 발견하는 때의 쾌감을 경험한다고 생각했는데, 한발작 한발자국 더 걷다보니 무라 하기에 귀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밑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느낌의 답 일부가 이 곳에 있는 듯, 초록의 내음을 깊게 들이켰다. 


어릴적 은회색 엑셀을 타고 네 가족이 드라이브를 하는 날이면, 도로 위 지루한 달림 사이 사이에 아빠는 코스모스가 나풀거리는 샛길로 변화를 주었다. 코스모스는 어느 계절에 피지, 아직 햇살은 따가우나 바람은 시원한 그 계절에 나는 들은게 기억이 나면서도 자꾸 물어보았다. 늦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운치 있는 그 계절의 맞이함을 확인하는 순간이 참 좋았다.   


논술 시험이 싫어 첫 대학에 무작정 원서를 넣었던 날, 회색 건물 안 복사 용지처럼 한장씩 끼어들어가는 것이 싫어 취업을 안하겠다고 선언한 날, 대학원 자퇴서를 내고 교보문고에 정석 수투를 사러간 날 등등 수 많은 무모함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변화의 순간에서 나는 겁이 없었고 설렜다. 지금은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이 불안할까, 불필요한 걱정만큼 걸음이 빨라지는 것 같아 중간중간 숨을 골랐다.


돌아오는 길에 음악을 들으러 갔다. 나의 신청곡이 나올땐 벅차고 다른 이들의 신청곡 전주가 흐를땐 두근거린다. 누군가 이렇게 좋은, '혼자 남은 밤'을 신청했나보다. 


아 이렇게 슬퍼질 땐 

거리를 거닐자 

환하게 밝아지는 내 눈물

아 이렇게 슬퍼질 땐 

노래를 부르자

삶에 가득 여러 송이 희망을 

환하게 밝아지는 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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