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ss Nov 02. 2021

살 좀 빼고 싶어요_다이어트 한약

고3 수학 시간, 나를 포함한 몇 명이 교실 앞으로 나가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고 있었다. 뒤에서 와 쟤 살 많이 쪘네! 이런 수군거림이 들려오는데 단번에 그 타깃이 나임을 눈치채고 넓어진 평수의 엉덩이를 씰룩이며 상의 교복을 내릴 수 있는 만큼 당겼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입학 당시에는 얼굴과 상체가 하체보다 작은 편이라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통통함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많지는 않아도 종종 여리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녔는데 3년 동안 공부도 많이 안 하면서 어찌나 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어댔는지 고만고만한 키에 10킬로가 넘게 찌면서 살도 트고 교복도 끼이고 움직이긴 더 싫어지고 몸이 점점 총체적 난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학 가면 살은 저절로 빠지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엄마의 말만 믿고 있었는데 수능을 보고 논술 준비를 하는 기간, 정작 호언장담하던 엄마는 본인이 느끼기에도 딸의 몸무게가 슬슬 걱정이 되셨는지 아무 생각이 없는 나를 끌고 한의원으로 가서 다이어트 약을 지어달라고 했다. 내 생애 두 번째 한약이었다. 


웬만하면 잘 참는 편이고 뭐든 가리지 않고 먹는 나한테도 한약 맛은 기가 막히게 썼다. 먹으면 입이 마르고 가만히 있어도 송골송골 땀이 나는 것처럼 덥게 느껴졌다. 아마 한약 복용을 시작하고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독하게 약을 먹고 줄넘기를 하고 식사를 과하게 하지 않으면서 7킬로를 감량했다. 다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났을 때엔 고등학교 입학 때의 몸무게가 되어 있었다. 독한 년, 이라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요즘에도 한의원에 오는 환자분들한테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살 좀 빼고 싶어요'이다. 어쩌다 한의사가 되어 다이어트 한약, 체중조절 한약을 처방하게 되니 아 내가 그때 먹었던 약재가 이거였겠구나, 이 맛이 그 맛이구나. 발견하고 반갑다. 참으로 다이어트라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평생 숙제처럼 따라다니는데 보이는 내 모습도 중요하지만 한번 몸이 가벼워져 본 사람들은 안다. 몸이 가뿐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무엇을 입어도 즐겁고 피부도 덜 예민해지고 코도 덜 막히고 변도 기복이 심하지 않고 복부 불편감도 덜 하고 잠도 더 잘 자고 더 많이 움직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는 체중조절을 위한 약과 보약은 한 끝 차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처방은 다 다르고 들어가는 약재도 용량도 다르다. 몸이 가벼워지고 체지방이 줄고 붓기가 덜해져 무겁게 느껴졌던 몸과 마음의 무게가 덜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깁고 돕는 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중이라는 혈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