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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05. 2017

갈팡질팡

책을 읽는 시간과 횟수가 늘었다.

인간실격,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보건교사 안은영,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김이나의 작사법, 나의 오컬트한 일상, 몸을 씁니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등등

명절엔 부모님 댁에서 틈틈이, 가져오지 못한 예전 책들을 뒤적였다. 


사람도 물건도 나만의 이유로 더 애착이 가는 게 있다. 어설픈 대화 속에서 등장하면 분위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만한 그런 이유들로 내 안에 숨겨두는 것이 있다. 대화가 어설프지 않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것을 솔메이트라고 하나. 어쨌든 대화라는 것이 네 입과 내 입의 공기 속에 글자만 떠 나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명령일 수도, 지적일 수도, 영혼 없는 아무 말일 수도 있고. 나는 대화보다 그런 경험을 훨씬 더 많이 해서 짐작할 수 있다. 더 많이 속상할 때는 대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돌아오는 길에 의심쩍고, 돌아와서 후회스러운 경우다. 

대화에는 장소도 중요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약속을 잡고, 탁자 위 촛불을 켜두거나,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숨을 고르는 것. 우리 모두는 이런 행위가 가능한 공간에서 더 애틋하게 말을 나눈다.

결국 마음이 좀 있어야 대화를 하는 것. 



이 책을 발견하고 나서 반갑고 애틋하기도 하여 애착과 대화에 대해 생각했다. 

기승전결의 스토리도, 마음을 울리는 감동도 글자 그대로라면 전혀 없는 책이다. 뒤적이기만 해도 사전 같은 책이다. 그런데 책 표지도, 책 크기도, 책장의 질감도, 글씨도 참 좋아 읽고 만져보고를 10년 넘게 반복했다. 잊힐 때쯤 부모님 댁에서 또 눈에 넣으면 바지 주머니 속 몇 달이고 숨죽이며 보물 같은 기쁨을 안겨주는 만원처럼 반전이 극적인 것이다.  


그런데 사전 같은 이 책에 스토리도 줄거리도 있다.


갈팡질팡함이 심하여 

방향도 어림짐작하기 어려울 때 하나씩 읽어두면

개념 하나하나가 잔잔하게 말해준다. 우리 다 엮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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