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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05. 2017

걷는 도중에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기 좋고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어째 나이와 역행하여 퇴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점점 더 머리를 쓰지 않고 마음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있다. 


어제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록불을 기다리던 연인의 대화가 나의 사랑과 참 닮아있었다. 기억할만큼 또렷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어렴풋한 대화에서 자존심 싸움이 한참인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남자가 던진 한 마디에 여자는 눈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측면으로 고개를 돌렸으며, 지금 나를 떠보는거야! 라고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하루 중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을 상상하며 함께 할 수 없던 사건들에 중립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부부와 연인들이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두가지는 헤어져, 그만 만나 라던데. 하는 행동이 마냥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나는 그 말들을 조금 자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헤어짐을 장난처럼 치부하려고 하고 혹시라도 있을 틈에 상처를 덜 받고자 지레 애썼다.  


2년째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나는 실연을 하였고 난생 이렇게 억장이 무너질만한 일은 처음이었다고 느꼈다. 부모님에게 공부하기 싫다 이외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여 평소에는 혼자 삭히고 숨어 울기 마련이었지만, 그 때의 눈물은 참는다 해도 억누른다 해도 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정도여서 이불 속 흐느낌은 금새 들통이 났다. 이별의 괴로움과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은 엄마가 짐작했는지, 괜찮다고만 했다. 그리고 눈물이 허용되는 공간과 시간을 내게 맡긴 채 자리를 비워주셨다. 가슴과 눈물이 따뜻해지면서 정말 괜찮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놀라웠다. 이런 일이 생겨도 눈물이 멈추면 또 사는구나, 그 날 저녁밥은 참 맛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면 밖으로 배출해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드라마 후렴부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연인이 죽는 장면, 고생만 하던 여인이 병에 걸려 쇠약해질대로 약해진 모습에 짜여져 있던 것처럼 휴지로 눈물을 훔치던 엄마도 이제는 왠만한 장면에도 별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나도 엄마도 점점 가슴속 차오르는 눈물을 찰랑찰랑 담고 있다가 때로 아슬하게 새어나가는 것을 습자지에 스미듯 흔적을 닦아내며 나이를 먹는다.       


철이 바뀌어도 눈물은 마르지 않으니 나의 철은 들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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