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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08. 2017

방학같은 사랑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을 공유해야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니 모든 것을 공유해야 사랑이 아닌가 믿고 싶었던 일에 자꾸만 틈이 생기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학교를 다닐 때 짧거나 혹은 길게, 일년에 두세번 찾아오는 방학이 되면 괜히 심란해지곤 했는데 같은 반, 학교에 있는 친구들과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당발이거나 속속들이 친구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는 성격과는 정 반대편에 위치했던 나는, 입을 여는 일이 많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것에 피곤함을 느꼈다. 너의 일에도 관심이 없는건 아니었으나 초점의 많은 부분이 나에게로 향해있던 아이였고 지금은 더 그러하게 늙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몸으로 말로 다른 아이들과 공유하지 못했던 부분을 머리 속으로 기억하거나 상상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은데, 방학은 그것도 더 어렵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한 곳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던 너와 너와 내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는 한두달을 보내고 나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크는 것처럼 기억도 마음도 다른 방향으로 가지치기를 했다.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씩 수치스러울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그간의 세월만큼 벌어진 틈을 때로는 자꾸 메꾸려하고 때로는 발견하기 두려워한다. 십몇년 전에는 스티커 한 장, 색실핀 하나에도 반나절을 설렘으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애써 쓰는 수식어구들 앞에 자꾸 주눅이 든다. 좋아해, 사랑해. 이 말로는 내 마음이 덜 전해질까 정말, 매우, 너무, 진짜 를 사이사이 끼워넣는다. 이제 방학은 없는데도 너의 가지가 지금보다 멀어질까 숙제처럼 핸드폰을 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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