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구에게나 언제나 딱 '한 사람'만 있다면"
-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이언주> 월가 애널리스트 신순규
유난히도 기관지가 약한 큰 아이였다.
모두가 마스크가 생명줄인 것처럼 의지하고 살던 그때, 아프면 안 되는 때였다. 가족 중 누구라도 열이 나면 코로나 의심자로 분류되었던 때였고, 응급실마저도 쉽게 갈 수 없는 때였으니 말이다.
주말이 다가오며 큰 아이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잘 아프지 않는 아이지만 한 번 아프면 크게 앓는 아이였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침이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병원 약도 처방받아왔고, 그럭저럭 컨디션을 유지하며 평소와 같이 게임도 하고 TV도 보길래 잘 쉬면 좀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한데, 시간이 갈수록 기침 소리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게 느껴졌다. 목이 아닌 몸속 어딘가로부터 끓어올라 내뱉는 기침 소리.
"태준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주중 내내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걸 보셨던 시터 이모님이 퇴근하시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이모님이셨기에 몇 번이고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당부에 당부를 하셨다. 서너 번의 코로나 키트 검사가 모두 음성이었기에 조금 안도하긴 했지만, 단순 감기인지 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둘째도 언제든 전염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나 또한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육아를 하며 느끼는 건데 사람의 신체 사이클은 참 신기하긴 하다. 낮엔 괜찮다가 밤이 되면 아프게 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람에게 하루의 신체 리듬이라는 게 있구나 매번 실감하게 되니 말이다.
밤이 되자 더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는 아이, 기침으로 숨도 잘 못 쉬는 아이는 얼굴이 이미 벌겋게 올라있었고 귀 체온계는 빨간 경고등으로 변해있었다.
"40도"
침착해야 했다. 우선 병원 진료가 급했기에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심한데 진료받을 수 있나요?"
"열이 나나요?"
"네, 열이 40도 가까이 돼요"
"저희 병원은 진료가 안될 것 같아요. 진료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가능한 병원이 어디인가요?"
"그건 저희도 잘...."
"아..."
아는 병원은 모두 전화를 돌려봤지만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안된다라고만 하면 어쩌란 말인가.'
절박하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고, 난생처음 119에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더니 금세 상담사 분이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기침이 심해요. 열도 나고요. 상황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모두 다 진료가 안된다고 해서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희 쪽에서 갈 수 있는 병원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15분 내 저희 대원들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관문 활짝 열어두세요."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119 대원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셋은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했다. 자고 있던 둘째를 깨워 옷을 입혔다. 응급실에서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기에, 여벌의 옷과 신분증 등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칭얼거리는 둘째를 달랬다.
그렇게 몇 시간 같았던 십여분이 지난 문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TV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왔고, 큰 아이의 상태를 살피더니 휠체어를 끌고 들어와 앉혔다.
"어머니, 갈 수 있는 병원을 다행히 구했는데 지금 열이 나니 음압실로 가야 해요.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거예요. 둘째 아이는 봐줄 사람이 없나요? 들어가면 못 나올 거예요"
'아.. 혼자 아이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우리 셋은 119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호흡기를 달고 숨이 좀 편해진 아이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또, 그 와중에 119를 처음 타본다며 신이 난 둘째 아이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전화부스 같은 음압실로 옮겨졌고, 아이는 이런저런 검사를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있었다.
"어머니, 원인이 뭔지 모르니 아이 입원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보호자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고, 다른 아이 동반은 안 돼요."
"아.... 어쩌죠. 작은 아이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멀리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아프신 아버님을 돌보고 계신 시어머니께 부탁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떠나고도 아이 둘과 그렇게 씩씩했던 나였는데, 처음으로 막막함을 느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모님 뿐이라는 생각에 죄송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다.
"이모님, 전데요. 밤늦게 죄송해요. 태준이가 상태가 심해서 지금 입원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그럼 수현이가 같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요. 죄송한데, 지금 수현이 좀 데려가주시면 안 될까요?"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자정이 넘은 시간, 고된 일주일을 보낸 주말 쉬고 계셨던 이모님은 그렇게 전화 한 통에 단걸음에 달려오셨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모님이 내어주신 어깨에 안도할 수 있었고 감사의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나흘의 입원 기간 동안 둘째 아이를 이모님께 맡긴 채 난 온전히 큰 아이를 돌볼 수 있었고 우린 건강하게 퇴원했다. 지금 돌아봐도 아찔했던 순간, 이모님의 헤아림이 없었다면 그 시간 난 또 홀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된 일이고, 그 뒤로 이모님과 이때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그때 진짜 아찔했었지라며 웃어넘기는 추억담이 되었지만 돌아보면 이 일은 나에게는 커다란 삶의 지혜를 주었던 것 같다.
"힘들 땐, 기꺼이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해. 누군가가 내어준 어깨에 감사하며, 네가 받았던 것처럼 너도 네 어깨를 누군가에게 내줄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가끔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음 이야기, "어머니, 아이 상담 좀 받아보면..."
기대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