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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 Nov 13. 2024

수퍼 울트라 워킹맘 되기

누구나 새하얀 캔버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 캔버스 위에 어떤 색의 물감을 칠할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온전하게 나의 자유다. 다른 누가 "이런 색은 안돼", "이런 그림은 안돼"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포기가 나쁜 것인가? 시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어느 정도 노력을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룰 수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도 용기이지만, 이루지 못할 일을 포기하는 것도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찾던 것들은 늘 곁에 있었다>, 이노우에 히로유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고, 아이가 우선이어야 하고, 그 무엇보다 가족을 앞세워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다. 우선순위가 없이, 이것도 저것도 다 완벽히 챙겨야 하는 그야말로 수퍼 울트라 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엄마의 삶이 그랬다. 맞벌이로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 가장으로서의 아빠의 고된 삶도 어려웠지만 그런 아빠와 함께 장사를 하시며 집안일과 육아를 하신 엄마의 삶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니, 만만치 않은 게 아닌 고된 노동이 연속이었고 지치고 힘든 나날의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챙겨야 할 남편이 있고,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엄마는 자신의 삶은 없는 아내와 엄마로의 역할만 있는 수퍼 울트라 워킹맘이 되어야 했다.


그 시절 엄마의 나이가 되어, 나도 엄마의 삶을 살다 보니 그땐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삶이 보였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보통의 삶이라도 살고 싶다던 엄마의 바람. 평범함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웠는지 알지 못했다. 그 삶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는지도 미처 알지 못했고, 오만하게도 그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엄마는 이름이 없었던 것 같다. 어딜 가나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렸고, 맞벌이로 아빠와 함께 장사를 하며 경제 활동을 했지만 사회가 바라는 아내와 엄마의 모습으로서 아빠의 그림자에 가리어져야 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느낀다. 엄마도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희생만이 아닌 내가 소망하는 나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을 테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단 하루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이 있어'라고 수도 없이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랑으로의 희생도 필요하지만, 때론 자신의 삶도 있어야 함을 인정받는 '사람'이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 엄마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하신다.

"스무 살에 결혼해서 장사하며 너희 낳고 한참 키웠을 때, 스무 살 중반부터 마흔 중반까지 엄마는 그 시절이 잘 기억이 안 나. 그저 매일 바쁘고 힘들다 생각했던 기억밖에 없어. 한데, 그때 그렇게 힘들었었는데 그때가 그립다. 참 신기하지'


남편 없이 혼자 두 아이를 지켜내야 했던 몇 년간의 시간 동안 수퍼 울트라맘과 워킹맘 두 가지를 완벽히 해주길 바라는 사회의 기대를 마주하며 엄마로서의 한계, 워킹맘으로서의 부족함에 수도 없이 고민했었다. 온갖 일들이 생겨도 완벽히 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엄마의 딸이니, 나도 수퍼 울트라 맘이 될 수 있는 기질이 있을 거다 생각했다. 오만이었고 자만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엄마의 존재, 엄마의 역할, 엄마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스스로에게 기대한 만큼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불안정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고는 후회하는 나를 바라보며 수없이 자책했다.


깎이고 또 깎이며 깨닫게 되었다. 사회가 바라는 수퍼 울트라 워킹맘이란 이상적인 모습은 닿을 수 없는 이상이라는 걸,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닌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할 수 없는 부분은 빠르게 인지해 대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의 시선과 기대로 꽉 찬 그림에 완성도를 높이려 하기보다, 엉성하게 비어있더라도 내 상황에 맞는 캔버스를 펼쳐 비어있는 부분을 색칠해갈 수 있어야 엄마의 삶도 워킹맘의 삶도 살아낼 수 있음을...


모든 게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엄마의 삶도 그렇다.



Saydung89, pixabay





다음 이야기, "죄송한데 지금 와주실 수 있을까요?"

기대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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