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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유식빵 Sep 11. 2023

2020년에 이런 회사가 있다고?

편집하지 못하는 편집자 2

연차가 무려 3개!     


 처음엔 북에디터를 보며 내가 일해보고 싶던 문학, 에세이, 인문 쪽 출판사만 찾으면서 신입 구인공고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점점 장르에 상관없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고, 편집자가 아닌 마케터를 뽑는 곳에도 지원하게 되었다. 쉽게 취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도 거의 받지 못했다. 마케터를 지원했던 곳에서 면접을 한 번 보았고(면접 후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기획을 뽑는다는 곳에서 면접을 또 한 번 보았다. 나는 ‘기획도 편집자의 업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영등포구에 있던 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출판계는 박봉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와서 월급이 적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했고, 당장 경력을 쌓는 것이 급했던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서 부조리함을 욕하며 10달을 버텼다. 나이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는데 28살의 신입이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나 보다. 

 

 2020년 1월에 입사했는데, 첫 6개월은 인턴이라는 명목으로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연봉 1,800만 원에 일했다. 9-6시 8시간 근무였는데 말이다. 4대 보험을 떼면 월급이 너무 적어져서 싫어할 거라는 핑계로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년 간 회사에 다녔지만 나는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고, 실수령액 1,370,500원의 호구 직원이었다. 7월부터는 정직원이라는 명목으로 연봉이 조금 올랐다. 그래서 실수령액이 1,535,540원이 되었다. 연차도 1년에 3개라고 했다. 분명 회사에 직원은 사장 포함 10명이었는데, 사업장을 쪼개서 나는 5인 미만 기업에 다니는 것으로 되어 연차를 줄 의무가 없는데 무려 3개나 주는 것이라고 했다. 식대도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10달을 버텼던 힘은 4개월 먼저 입사한 한 살 어린 친구와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월급이 적어도 일이 즐겁고 보람차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들어가 멋진 편집자가 되면 월급도 차차 오르겠지’라고 예상했는데, 그건 나의 꿈이었다. 월요일은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다 같이 사무실 청소를 해야 했고, 그것과는 별개로 매일 아침 사장실에 들어가 담배꽁초를 버리고 포트에 물을 채우고, 히터를 켜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10분, 15분간 한 일도 업무일지에 다 적어야 하는 숨 막히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명함에는 기획/홍보라는 역할이 달려있었는데, 나의 업무는 매달 2건 이상의 저자 계약을 하고, 돈을 들이지 않는 홍보 방법을 찾아 홍보하는 것이었다.


너는 계약이나 해     


 사실 SBI에서 다뤘던 원고도 인문 장르의 글이었고,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도 대부분 문학, 인문, 철학, 역사 등이었기에 편집자는 당연히 이런 글을 다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 직장인 K출판사는 요리, 베이킹, 뜨개, 경제·경영, 호흡이 짧은 에세이, 어린이 컬러링북 등 실용서를 만드는 곳이었고, 여기서부터 나의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8시간 일을 하면 그중 절반 정도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등을 보면서 저자로 섭외할 사람을 찾고, 그 사람에 대해 정리해서 대리와 회의 후 OK를 받으면 책을 쓰자는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최대한 기존에 책을 내지 않았던 사람만 찾아야 해서 더 쉽지 않았다. 메일을 꾸준히 보내도 답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답장이 와도 그중 절반은 거절, 관심을 가지는 분도 미팅에서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는 때도 왕왕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약 수를 채우지 못하는 달도 있었고, 그때마다 사장실에 불려 가 혼났다.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긍정적으로 답을 해준 사람에게 연락처를 받으면 그때부터 연락해서 미팅하는 것은 편집장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찾은 저자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원고가 내 손에 온 적도 없었다. 대신 출간된 책에 사무실에 들어오면 온라인 서점에 보도자료를 보내고 그 책을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디자이너가 없다시피 해서 상세이미지를 만들 사람이 없었기에, 나와 동기가 온라인 서점에 올릴 카드뉴스를 만들었고, 돈을 쓰지 않으면서 무료로 서평을 써줄 곳을 찾았다. 네이버 카페 중에서도 무료인 곳에서만 서평단을 모집하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책을 보내줄 테니 리뷰를 해달라는 메일을 계속 보냈다. 돈을 조금이라도 쓰면 더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사장은 돈에 너무 인색하면서 효과가 없다고 따졌다. 본인 건물을 사고 차도 바꿨지만, 직원들에겐 이면지를 사용하라고 했다. 

 

 회사의 유일한 문화라면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전날 다른 직원들이 몇천 원씩 돈을 내고(아마 3,000원이었던 것 같다), 당일 나와 동기가 아침에 파리바게트 빵을 몇 개 사고, 회사 근처의 저렴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 와서 오전에 15분 정도 생일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장은 돈도 안 내고 커피를 한 잔 가져가는 걸 너무 당연하게 했다. 황당하고 부당한 일이 많았는데, 속으로 욕하면서 이야기하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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