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하지 못하는 편집자 5
내가 마케터로서 일을 잘 해내지 못해서일까? 대표님께서 회사 일을 줄이고 다른 일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유튜브 채널을 새로 만들었는데 촬영은 해주시는 분이 계시니 그분과 반반 나눠서 영상편집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3~5명 정도가 나와서 이야기하는 콘텐츠였는데, 특별한 효과가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 말을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나오게 컷 편집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각 사람 앞에 카메라가 한 대씩 있고 전체를 찍는 카메라도 한 대 있어서 영상이 꽤 많았다. 반반 나눠도 내가 편집해야 할 영상의 길이는 40분 내외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막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영상은 일주일에 두 개씩 올라가야 했기에 나는 일주일에 한 개씩은 편집해서 올려야 했다. 매주 일요일에 서울숲역 근처에서 촬영했다. 영상 파일 크기가 꽤 컸기에 매주 수원에서 서울숲까지 가서 외장 하드에 영상을 받아오는 게 좀 번거롭긴 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삼성 노트북으로 프리미어프로를 돌려서 고화질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노트북이 상당히 버거워하며 열을 받고 느려지기도 했는데 다행히 꺼지는 일 없이 모든 영상을 무사히 업로드할 수 있었다. 내가 전문 영상 편집자가 아니다 보니 속도가 매우 느려 새벽까지 작업하는 날도 많았지만 이건 딱 완성된 결과물이 보이니 그래도 나름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약 두 달 동안 작업했고, 채널 정보에서 연출에 내 이름이 들어갔다. 작업이 끝났을 땐 아쉽기도 했다.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었는데 마케터에서 PD까지 흘러왔다. 그래도 나의 역할이 있다는 게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의 일이었다.
이 작업이 끝난 후 대표님과 카페에서 면담했다. 이 회사는 편집자가 아닌 마케터가 필요한데 나와 회사의 니즈가 다르니 더 함께 일하기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대표님은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필요하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게 돕겠다고 하셨다. 편집자를 구하는 다른 회사도 알아봐 주겠다고 하셨다. 마케터로서 일 인분의 일을 하지 못해 내가 미안한 상황이었는데 서로 미안해했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두 모금 마셨나? 대표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카페를 나와 지하철을 탔는데 눈물이 났다. 직장을 잃었다는 것보다 내가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고 위축됐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마무리라도 잘하고 싶었다. 12월까지는 월급을 주시겠다고 해서 하나 남은 북토크 영상을 두 개로 나눠서 편집하고 새 마케터를 위한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실력이 조금 붙었는지 마지막 영상은 만족스럽게 편집을 완성했다. 새 마케터 분도 따로 만나서 인수인계할 것들을 한글파일로 정리해 전달했다. 대표님과 셋이서 선릉역 근처의 커피빈에서 만났다. 편하게 이야기해도 되었는데, 커피도 다 마시지 않고 후다닥 도망치듯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감이 없어서 부끄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쯤 이 뚝딱이 같은 모습을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