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오늘 만난 여유
우리 집 뒷산 꼭대기에 오르면
서울 외곽 방향에는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이 빽빽이 있는
전경이,
서울 중심가 방향에는
낮은 건물과 집이 띄엄띄엄 있는 전경이 보인다.
아파트와 건물로 빽빽한 풍경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현기증이 나서
그래서 나는 늘 중심가 방향으로 몸을 틀어 시간을 보낸다.
그 쪽에선 멀리서도 여유로움이 전해지는
듯 하다.
“저런 동네선 누가 살까?
같은 산에서 같은 도시를 바라보는데, 이렇게나 다른 느낌이라니.. “
어쩐지 풍경만큼이나
저기 자리 잡은 사람들의 삶도 좀 많이 다를 것 같다.
뜨문뜨문 여유 있게 자리 잡은 집은
빽빽이 자리 잡은 동네 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문구가 있다.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제껏 불행과 행복을 가르는 이유가 줄 곧 한 가지 이유에서 기인했단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여유’
하지만 나의 삶은 늘 여유와 극대치점에 있었다.
일상 속, 소소한 나의 여유 없는 태도의 사례를 들어보자면,
나는 사고 싶은 어떤 물건을 발견할 때면
나의 상황과 환경을 계산하며 나를 쪼그라뜨리곤 했다.
-늘 나는 무언갈 맘편히 구매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들은 왜 이모양 이꼴인가..
나는 왜 이러한 것들을 쉽게 가질 수 없는 형편인가..
등등
팍팍한 자책들로 내 삶의 모든 여백을 꽉꽉 메우고
쪼그라진 나를 복구시킬 수 있는
유일한 키(key)로 사고픈 물건을 지정해 버리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옆에서 엄마는 늘 산통깨는 말을 하곤 했다.
“돈이 없지, 물건이 없냐?”
그럴때면 ‘저것만 가지면 행복을 가질 것 같은 환상 세계’에는 금이 가고..
돈만 생기면 가질 수 있는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꾸만 자신이 가진 것들을 탓하게 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탐하게 하며 굴러가는 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상
-속 물질만능주의-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 속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력으로 갈취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햇살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
온전한 나의 의지로 홀로 나아갈 수 있는 건강,
온전한 나의 의지로 가던 길을 멈출 수 있는 자유,
색을 잃어가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이것들에게 얻은 온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 다정한 마음..
돌이켜 보면,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왔건만..
산책에서 돌아와,
잠시 동생과 대화를 했다.
동생은 내게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얼마 전 내게 매우 무례하게 군 옆집 남자와 여자와 마주쳤다고 했다.
동생의 말에 나는 물었다.
“그래서?”
나의 물음에 동생은 이어 말했다.
“날 보고선 어머나 하고 깜짝 놀라시길래,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해 줬지...”
나는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욕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을 인간들한테 인사는 뭣하려 했어?
그러고 보면, 뭐..너에게는 나한테처럼 말을 막 하거나 폭력을 쓴 적이 없어서 너가 그렇게 하기엔 좀 그랬긴 하겠다만은.. “
그랬더니 동생이 말했다.
“놉놉,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여유지...
그 사람들에게 나의 여유 보여준 것뿐이야... “
동생의 말에 나는 말했다.
”아....
그래서 그 사람들도 너에게 인사를 하던? “
그리고 나의 물음에 동생은 답했다.
”아니, 그냥 인상 쓰며 아무 말 없이 내리더라고...
에효.. 정말 여유 없는 사람들.... “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 동생은 여전히 인사성이 바르구나..”
동생의 여유로운 태도에 내게도 다시 여유가 도는 것 같았다.
가지지 못한 여유를 위해 가진 여유마저 잃는 미련한 삶이 아닌,
가진 여유를 잘 누려서 더 큰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현명한 삶
오늘도 자연에게서 동생에게서 또 배웠다.
동상이 없지 동생이 없냐
남편이 없지 내편이 없냐
바다가 없지 산이 없냐
사려 깊은 이웃이 없지 사려 깊은 지인이 없냐
인맥이 없지 인성이 없냐
집중력이 없지 센스가 없냐
명품가방이 없지 가오가 없냐
고가명품이 없지 품격이 없냐
자가가 없지 잘때가 없냐
경제적 여유가 없지 시간적 여유가 없냐
미친소질이 없지 미소가 없냐
안정이 없지 안목이 없냐
잔고가 없지 잔머리가 없냐
몇가지가 없지 싸가지가 없냐
미래가 없지 현재가 없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