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yourself a happy little Christmas.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해 줄 녀석들은 바로,
산책하던 눈 길에서 만난 몇 개의 솔방울들이다.
마트에 파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비하면 조약 하지만,
내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솔방울들이 여느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아름답게 느껴졌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솔방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해 행복행복해
행복해 행복행복해
행복해 행복행복해
행복해 행복행복해
커피소년 <행복해> 가사 중..
그러고 보면 나는 어디서든 끊임없이 아름다움이나 행복을 찾아내려 하는구나 싶다.
허나,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을 달고 사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인걸까?
내가 요즘 즐겨 보는 강신주 님이 알려주는 장자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두 철학자인 '장자'와 '니체'가 공통적으로 중시한 개념이
바로 망(忘)이라 한다.
장자는
잊는 것은 소화됨이요.
기억되는 것은 체증이라 해석하였단다.
따라서 진짜 행복한 상태는 행복을 말하는 상태가 아닌,
행복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인 거라..
그런 개념에 대입해 봤을 때 나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는
극심한 소화불량, 체증 상태에 시달리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눈들이 쌓일 틈 없이 싹싹 쓸어져 있는 경사진 비탈길을 걸으며,
누군가의 빗자루질을 한번 더 인식하게 됐다.
그간 내가 이 길을 무탈히 길을 걸어왔던 것은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의 노고 덕분이었으리라..
“나는 여태껏 눈도 한번 안 쓸어보고.. 참 세상 한번 편하게 사네..”
하지만 이렇게 빗질 없이 걸을 수 있는 편한 길이 진정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마당에 나가 빗질하는 나를 상상해 봤다.
눈이 오면 지금 보다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빗질을 수천번 반복하는 상상을 함에도 불구하고
눈 덮인 너른 마당이 있다면 지금보단 덜 불행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어린이 집에 다니던 조카 녀석은 길을 걷는 족족이 멈춰 서서 “아, 예쁘다.”를 연발하였다.
도보 시멘트에 자라난 잡초에도 멈춰서 들여다보며 “아, 예쁘다.” 뿐만 아니라 “사랑해요”라는 말도 얼마나 헤픈지..
길을 가며 만난 행인에게 조차도 온정을 다 퍼주곤 했다.
그땐 그저 그 아이의 감수성이 섬세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후로 그 아이에게서 마음이 아픈 증세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곁에 붙어 "사랑해요"를 끝없이 말하던 아이는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져 적대감에 가득 찬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전에 그 아이가, 그 아이만
내게 해줬던 말인 사랑하다는 말을
먼저 해주고, 누구보다 꼬옥 안아주었다.
딱 하루 그랬을 뿐인데..
몇 달 뒤 다시 만났을 때, 그 아이의 눈빛은 꽤나 따뜻해져 있었다.
누구보다 예쁨과 사랑을 말하던 아이는 누구보다
예쁨과 사랑이 결핍된 상태였었던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것도..
내겐 세상이 척박하고 녹록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겠구나 싶다.
난 행복해
그동안 널 볼 수 있던 그날들 때문에
난 널 못 잊어 죽는 날까지 사랑해
이소라 <난 행복해> 가사 중..
전에 잠시 보게 됐던
네덜란드의 한 TV프로가 생각이 난다.
거기선 그냥 눈 덮인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가 달리는 영상만 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그 프로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프로로 소개되었다.
네덜란드에선 그렇게 열차가 달리는 모습만이 며칠 내내 방영되며 시청률도 꽤나 높다고..
그때가 생각이 난다.
잠시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시간이...
당신만의 소소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만나길 바라며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