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남계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함양 일주일살기

by 별나라


경상남도 함양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이 있다.

서원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향교가 공립이라면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에 해당된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년)에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으며,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라는 사액을 받았다.

사액이란 조선시대에 임금이 서원에 이름을 지어 내려주는 것, 즉 왕이 서원의 현판(이름)을 공식적으로 내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서원에 있어 사액이 중요한 이유는?

사액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사액을 받은 서원은 단순한 지역 교육기관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공식 유교 교육기관으로 격상된다는 의미이다. 둘째, 사액을 받으면 국가로부터 재정적, 행정적 특권을 보여받는데 토지와 노비, 서적, 재정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었고, 면세 혜택이나 군역 면제 등이 주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군역 면제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현재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혜택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쨰 혜택은 사액으로 인해 서원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함양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남계'라는 이름은 서원 근처에 흐르는 시내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자연과 어우러진 서원의 아름다움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는 이름이다.

홍살문

서원을 들어가려면 홍살문을 지나야 한다. 홍살문은 붉은 색으로 칠한 살, 즉 창 모양의 가느다란 나무를 세워 만든 문인데, 실제 문이라기 보다는 '경계'를 표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성한 공간을 표시하거나 속세와 구분을 하는 역할을 하였다. 다시말하면 홍살문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서원의 정체성과 정신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라는 사실이다.

풍영루

홍살문을 지나면 풍영루다. 풍영루는 남계서원의 첫 번째 관문으로, 누각 형태의 출입구 건물이다. '동입서출'이라고 들어갈 때는 동쪽으로 나올때는 서쪽으로 나와야 한다고 한다. 헷갈리면 그냥 오른쪽으로 들어갔다가 오른쪽을 나오면 된다는 해설사님의 설명이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출입과 휴식, 소규모 모임 장소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2층에 오르면 저 멀리 들판이 보인다.

풍영루 다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연못이다. 좌우 양측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 유생들이 자연속에서 공부하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가운데 명성당과 오른쪽 양정

연못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서원을 살펴볼 수 있다.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은 남계서원이라고 현판이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명성당'이라고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는 데 이곳이 바로 강의와 강연의 공간으로 1559년 완공되었다. 정면 4칸 구조로 중앙 2칸은 마루, 양쪽 1칸씩은 온돌방(협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성’이라는 이름에는 “밝아지면 정성스러워진다”는 『중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명성당 옆에 있는 협실은 유생들이 모임이나 사적인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명성당 앞쪽으로 양정재와 보인재가 있어 기숙과 개인 학습에 활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숙사라고 하기에는 공간이 매우 작아 도대체 유생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서원의 유생은 수십명에서 백 명 안쪽으로 공부했었다고 전해진다.

경판고(장판각)

명성당 옆쪽, 그리고 양정재 뒤쪽으로는 경판고이 자리잡고 있는데 경판고는 장판각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유생과 강학활동을 위한 서책, 목판 등을 보관하던 건물입니다. 유생들을 교육한 자료들은 현재 함양박물관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사당으로 이르는 길

서원은 단순히 교육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크게 두가지 기능이 있는데 교육과 제향이 그것이다. 그래서 서원에는 제향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남계서원은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학후묘라나 앞에서는 교육을 하고 뒤에서는 졔를 행한다는 의미로 이러한 배치구조는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전형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당하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 첫번째 서원은 소수서원인데 건물배치에 있어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학문의 공간을 지나면 엄청난 길이의 가파란 계단이 보여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 계단을 오르면 명성당이 발 아래 보이고 저 멀리 함양의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제향영역의 입구인 내삼문을 지나면 정면에 사당이 보인다. 이곳에는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어느 곳보다도 엄숙하고 경건한 곳이다. 그러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단정한 옷차림과 경건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당

사당안에는 일두 정여창 선생, 강익, 정온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가운데가 정여창 선생이다. 정말 함양은 정여창 선생을 빼 놓고는 논할 수 없는 곳이다.

사당 옆에는 전사청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제향에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사 준비를 담당하는 기능적 보조 공간이다. 단촐하지만 경건한 공간, 새들도 조용하게 지나간다.

청계서원


남계서원을 나서 조금 만 더 이동하면 청계서원을 만날 수 있다.

남계서원에 비해 더 단정하게 잘 보존된 느낌이 되는 서원이었다. 역시 남계서원과 마찬가지로 홍살문과 입구를 지나면 강학 공간과 그 양 옆으로 기숙공간이 있었다.

청계서원은 1495년, 연산군 때 유학자 탁영 김일손(1464–1498)이 ‘청계정사’를 세워 강학 활동을 펼쳤으며 무오사화 이후 폐허화되었다가, 1905년 유림들이 기념비를 세우고, 1907년–1917년 사이 서원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청계서원, 노송이 너무 멋지다
구경재

두번째 봐서인지 서원의 구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강당은 마루로 이루어져 있고 양 옆에 있는 공간은 기숙 및 사적 공부 공간이다. 구경재는 누마루 포함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의 거처와 토론 및 자습 공간과 더불어 누마루에서 쉬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남계서원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사당이 나온다.

청계서원 사당


이상하게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계서원보다 그 옆에 위치해 있던 청계서원이 더 잘 가꾸어지고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원에 깔린 잔디, 연못 그리고 멋지게 드리워진 노송까지 정말 살뜰히 관리되고 있었다.

두 서원을 연달아 보니 전학휴묘의 서원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 그 먼 옛날 우리나라 사학의 상징이었던 서원의 모습을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교육을 중시했던 조상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교육기관과 교육정책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참, 서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문화해설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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