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완벽한 레트로 -리장

중국여행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by 별나라



리장과의 첫만남은 혼란스러웠다. 리장 고성 남문에 내려 전화만 걸면 마중나오겠다는 숙소 주인아저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빨려들어가듯 남문을 지나 리장 고성 속으로 트렁크를 끌고 걸어 들어갔다. 와...정말로 큰 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생각보다 넓은 길에 사방으로 작은 길들이 연결되어 있고 길들이 묘하게 휘어져있어 이곳인가 싶으면 저곳이고, 저곳이네 싶으면 다른 곳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이나 경주 황리단길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주소 한장 달랑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듯 구경하며 오늘 안에 숙소를 찾을까 싶을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주인아저씨는 리셉션에서 아마도 지인인듯한 분과 한가로이 찻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 화도 못냈다. 중국스런 장면이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참 아름답다. 2층으로된 구조에 가운데 중정이 있는 형태. 숙소 방문을 열고 나오면 테라스이기도 하고 회랑이기도 한 듯한 공간에서 멀리 옥룡설산 꼭대기가 슬쩍 보인다. 목조로 지어진 건물들 곳곳에서 오래된 역사의 숨결과 삶의 손때가 느껴졌다. 아침은 제공하지 않지만 부엌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정말 크고 듬직한 개가 우리를 지켜주었다. 전화를 받지 못하신 주인 아저씨는 3박을 묵는 내내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특히 리장을 떠나 구이양으로 떠나던 날 새벽, 그 컴컴한 어둠을 뚫고 손수레에 우리의 트렁크를 싣고 남문 밖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바래다 주셨다. 감사합니다!



완벽한 레트로 리장 고성


리장은 약 800년 전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나시족이 세운 마을이라고 한다. 나시어로 '진사강이 머리를 돌리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윈난성 해발 2400미터에 세워졌으며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리장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1월초 눈을 들어 저멀리 고성 밖을 바라보면 옥룡설산의 눈 덮인 하얀 머리가 위엄있게 빛나고 있다. 그 눈이 녹은 물이 굽이 굽이 흐르고 흘러 리장 고성에 도달하였고 그 물이 리장 고성 사이사이를 마치 뱀처럼 휘감고 지나간다. 그 물위로 버드나무 가지가 살랑살랑 일렁이면 활짝 열어제낀 찻집의 창문에선 나지막한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와 잔잔히 퍼져나갔다. 고개를 잠시 내려 발 밑을 보면 기나긴 세월 속 닳고 닳은 돌들이 올록 볼록 깔려 있다. 너무 미끈하게 빠져서 비라도 내리면 쉽사리 미끄러질것만 같은 그 돌바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는 것이 리장 고성에서 꼭 해야만 하는 버킷리스트이다. 리장고성의 고즈넉하고 여백의 미를 즐기고 싶다면 겨울여행을 제격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 아름다운 길들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 시장터로 변한다고 한다.



KakaoTalk_20191210_152452248.jpg
KakaoTalk_20191210_152453804.jpg
KakaoTalk_20191210_152455160.jpg
KakaoTalk_20191210_152935956.jpg 요런 길을 걸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KakaoTalk_20191210_152453363.jpg
KakaoTalk_20191210_152453208.jpg
KakaoTalk_20191210_152455535.jpg



리장의 1월이 따뜻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마냥 봄날씨는 아니다. 코트도 입어야 하고 한참을 걷다보면 손도 살짝 시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곳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꽤 여럿 보였다. 수채화도 아니고 유화를 물가에 세워놓고 그림 삼매경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솔솔 올라온다. ㅎㅎ 운하 옆길 한적함을 한껏 즐기다 보면 바람결에 실려 나즈막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나 이야기 소리들이 유혹적으로 몰려온다. 자연스레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눈호강을 할 수 있는 상점거리와 만나게 된다.

리장의 거리는 참 볼거리 살거리가 많다. 차, 종이, 악기, 다양한 전통 먹거리 등이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늗다. 특이한 점은 모든 상점들의 문이 없었다. 상점 전체가 전면이 열려있는 곳들이 참 많았다. 들어가고 나가기가 쉬워 구경꾼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KakaoTalk_20191210_152935409.jpg
KakaoTalk_20191210_152934714.jpg
이 돌바닥길이 너무 이뻤다!
KakaoTalk_20191210_152935539.jpg
KakaoTalk_20191210_152935758.jpg
인상깊었던 상점들


길을 따라 늘어선 이쁜 상점들을 구경하며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면 어느결에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아 여기가 중심 광장이구나!라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리장고성의 중심 쓰팡제(四方街)다. 거의 광장이 다 채워질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나시족의 공연 등도 떄때로 열린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넓은 공간을 갑자기 만나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더 많은 양의 햇빛을 받고 사람들이 만들어 내니 활기를 충분히 즐긴다. 이때 느낀 생각. 리장이 참 넓다!



KakaoTalk_20191210_152454726.jpg
KakaoTalk_20191212_111553146.jpg
KakaoTalk_20191212_111611803.jpg
리장의 중심 광장 사방가


이쯤되면 살짝 다리가 아프지만 리장고성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본다. 와~~살짝 오르막을 오르면 멀리 옥룡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삐죽삐죽 기와의 처마와 더불어 너무 멋진 풍경이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리장 고성 성밖이다. 성 밖으로 나오니 스타벅스도 있고 피자헛도 있다. 물론 매우매우 리장스럽게. 그리고 유명한 리장의 물레방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고.


KakaoTalk_20191210_152936183.jpg
KakaoTalk_20191210_152453506.jpg 설산을 배경으로 한 물레방아를 벽화로 그렸네요!
KakaoTalk_20191210_152936607.jpg


KakaoTalk_20191210_152936731.jpg 동파문자로 소원을 적어 매달아 방울소리와 더불어 하늘로 보내는 소원첩


KakaoTalk_20191210_152936923.jpg
KakaoTalk_20191210_152937032.jpg 동파문자라는 나시족의 상형문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시족은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동파문자라는 상형문자를 가지고 이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데 그림과 부호로 이루어진 문자라고 한다. 리장 상점들중에는 전통 수제종이에 이 동파문자가 써 있는 노트 등을 파는 곳있었다. 흥미로운 곳.


KakaoTalk_20191210_152937394.jpg
KakaoTalk_20191210_152937733.jpg
KakaoTalk_20191210_152937841.jpg



리장 고성 여행은 참 묘하다. 리장 고성에 발을 디디는 순간 현대에서 고대로 걸어들어간 느낌이다. 목재로 지어진 건물들이 그 자체로 유구한 역사를 드러내주며, 담벼락에 무심한 듯 쓰여져 있는 동파문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저멀리 시야에 옥룡설산이 위엄을 드러낸다. 참 완벽한 조화다. 골목 곳곳에 아름답고 매력적인 카페가 즐비하다. 창 없는 창문을 내다보며 리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것도 리장 여행의 버킷리스트중 하나.


리장은 1992년 진도 7의 대지진을 격었다. 그 과정에서 3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리장 신도시는 거의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시족이 만들어낸 리장 고성의 기와집들은 70퍼센트이상이 건재하였다. 기와집을 지을때 쇠못을 사용하지 않았고, 기둥과 대들보를 맞춤식으로 건축한 것이 지진을 견뎌내게 한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큰 일을 겪고도 이렇게 건재하다니 나시족의 지혜가 새삼 훌륭하게 느껴진다.




다옌전이라 불리는 리장 고성. 옥룡설산을 머리에 이고 그곳에서 흘러내린 물을 두 팔 벌려 받아들여 리장 고성여기저기 찻집에도, 상점에도, 객잔에도, 그리고 여염집에도 옥룡설산의 깨끗한 물을 만나게 한다. 이층 기와집과 옥룡설산이 물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콜라보가 완벽한 레트로를 만들어 내는 곳.

참 아름다운 곳.

keyword
이전 03화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지옥의 매운 맛, 훠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