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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14. 2020

그때 꼭 필요한 커피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5층 건물이었는데 계단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엘리베이터가 있었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디로 다녀? 계단 대신 거대하고 넓은 경사로가 있었다. 경사로는 계단보다 훨씬 많은 공간을 차지했기 때문에 건물 정면은 밋밋했지만, 뒷면은 경사로가 자리한 건물 양 끝과 중앙 부분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 경사로에서 스키를 타듯 슬리퍼로 우아하게 미끄러지며,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갔다. 내려가는 속도가 끝내줬다. 


경사로에도 계단참과 같은 중간 기착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음료 자동판매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오는 길에 늘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 넣어 네스카페를 한 캔 뽑았다. 철커덩 자판기에서 굴러 떨어진 커피를 들고, 따각 입구를 따서 스릅스릅 커피를 마시며 교실로 돌아가 다시 책장을 넘겼다. 처음에는 가끔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매일 밤 그랬다. 그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때마다 나는 내가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캔커피 하나로 어른 흉내를 냈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못한 청춘일 뿐이었다. 커피 한 캔으로 기나긴 자율학습을 위로할 뿐이었다. 커피는 썼다. 


인생이 써서 그랬을까. 장밋빛은 아니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나는 것만이 목표였고, 그 이상의 꿈과 목표도 없었다.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다. 그냥 점수에 맞춰 가지, 아무렴 어떠냐는 자세로 집을 떠날 날만 기다렸다. 커피는 떠남을 준비하는 쓰디쓴 음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커피는 정말 달았지만,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다. 어른의 삶을 알지 못하듯 커피의 맛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동네 커피숍 드롭탑으로 달려가 마시는 쓰디쓴 아메리카노는, 참 달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뒤늦게 꿈을 찾아 방황할 때, 풋풋한 학생처럼 다이어리에 꿈을 적으며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써도 달았다. 마침내 번역가가 되고 나서, 역시나 카페에서 책을 펴고 일하면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뿌듯한 마음만큼 달았다. 종일 카페에 앉아, 마치 도서관처럼 밖에서 얼른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돌아와 일하던 시절이었다. 


커피는 차갑게 식었고, 그건 곧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늘 조금만 더 일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오길 원했다. 달았던 아메리카노도 일어서기 직전에 들이키는 다 식은 마지막 한 모금은 썼다. 조금 더 일하고 싶은데 가야 해서, 일도 하고 싶은데 아이도 보고 싶어서, 그 복잡한 마음처럼, 마지막 한 모금은 늘 썼다. 


달았던 커피도 써지는 마법. 그때 삶은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리면 되는 청춘 시절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삶은 커피처럼 쓰다가도 달았고, 달다가도 썼다. 일도 하고 싶었고 좋은 엄마도 되고 싶었다. 결혼은 행복하기도 했고 징그럽기도 했다. 아이는 예쁘다가도 힘들었고, 남편은 든든하다가도 귀찮았다. 나는 괜찮은 사람 같기도 했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초라한 인간 같기도 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던 시절이었다.      


     




"같은 거 드려요?"

    

"네."

     

늘 가던 카페 직원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한다. 

노트북을 켜고 책을 펴 오늘 번역할 부분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하얀 우유 거품 위에 예쁜 꽃이 그려진 먹음직스러운 카페라테가 내 앞에 도착한다. 아메리카노에서 카페라테로 넘어온 지도 벌써 몇 년째다. 그 사이 아이는 컸고, 우리는 이 나라 저 나라 옮겨가며 때론 벅차게, 때론 그럭저럭 살고 있다. 이제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어느 정도 보았는지, 달지만 썼던 네스카페도 싫고 썼지만 달았던 아메리카노도 싫다. 너무 달아서 싫고 너무 써서 싫다. 카페라테가 좋다. 따끈한 우유에 부드럽게 안긴 커피가 지금의 내 인생과 닮았다. 청춘의 단맛도 육아의 쓴맛도 지났고, 크게 벗어나고 싶은 것도, 크게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모든 게 적당히 잘 버무려진 지금의 삶에는, 그저 부드럽고 따뜻한 카페라테가 어울린다. 


따뜻한 유리잔을 두 손으로 들고 첫 모금을 마시면 쓴 것 같기도 하고 단 것 같기도 한 커피가 풍부한 우유 거품에 포근히 안겨 입속으로 들어온다. 목으로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가 말없이 나의 하루를 위로한다.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카페라테를 마시며, 나는 지금 인생의 계단참에 와 있다고 느낀다. 비록 무엇이든 뽑아 마실 수 있는 자동판매기는 없지만, 당분간은 머물러도 좋을 곳. 너무 쓰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게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의 계단참. 잠시 삶의 숨을 고르는 곳. 따뜻한 카페라테와 함께 내가 당분간 머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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