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거 입어도 될까?
안 돼! 추워! 감기 걸려! 며칠째 반복되는 실랑이였다. 그런데 날이 약간 포근해져 드디어 새로운 답이 가능해졌다.
그래! 오늘은 입어도 되겠다!
그것은 바로 반바지! 시드니에 도착하는 날 입고 왔다가 2주 내내 가방에 처박혀 있던 반바지를 드디어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엄마의 의견을 묻고 그럴듯한 반대 의견이라면 고집은 피우지 않는다. 사춘기를 무사히 지나왔기 때문이겠지. 당연히 우리에게도 말 못 할 사춘기 대란이 있었다. 다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니 새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둠의 세계에서 밝은 세계로 나와 준 딸이 고맙다.
된장찌개를 뚝딱 끓여 먹고 멜버른 대학교로 갔다. 숙소에서 따뜻한 볕을 맞으며 걸어서 15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신학기라 그런지 신입생들을 위한 행사가 여기저기 열리고 있었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신입생들 틈을 활보하다가 매점에서 티셔츠를 한 벌 샀고 교내 커피숍에서 라테를 한 잔 사서 아이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앉아서 학생들을 구경하는데 교정을 꽉 채운 이들의 태반이 검은 머리다. 검은 머리라도 호주에서 나고 자란 호주인들과 주변 국에서 유학 온 아시아인들이 섞여 있었겠지만, 어쨌든 검은 머리가 노란 머리를 압도하는 광경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시아 계가 많은 호주의 대학에 대해, 그러다 호주의 이민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살았던 시절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 앞으로 아이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 호주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중구난방 이어졌다. 까맣거나 노란 머리의 청춘들 틈에서.
어쩌면 늘 파도를 타고 있는 게 바로 청춘 시절이 아닐까. 언제 큰 파도가 밀려올지, 언제 파도가 갑자기 꺼져 버릴지 예측하기 힘든 시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이니까, 그 에너지와 열정과 호기심과 모험심을 등에 얹고 신나게 파도를 탈 수 있는 거겠지.
청춘이 파도를 타고 있다면 중년은 모래사장에 누워 있다가 잠시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적시며 노는 시기, 노년은 더 멀리 앉아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만 물론 나는 그러한 중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청춘을 앞둔 아이가 파도를 타고 멀리멀리 나아가면 좋겠다. 멀리 나갔다가 내가 앉아 있는 모래사장으로 꼭 돌아오지 않아도 좋겠다. 바다 건너 다른 섬으로 파도를 거슬러 나아가도 좋겠다.
다 크면 당연히 독립시켜야지! 생각했지만, 그 시기가 다가올수록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떠올려 본다.
멀리멀리 나아가렴.
위험하니까, 돈이 많이 드니까, 나가 봤자 별 거 없으니까 그냥 엄마 아빠 옆에 있으라는 말보다, 나도 가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의 말을 듣고 싶을 것 같다.
그럴 수 있게 잘 키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의 몫은 거의 끝났으므로 앞으로 자신을 더 키우는 것은 오로지 제 몫일 것이다. 청춘을 두 팔로 가득 껴안은 자의 숙제일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 세상에 맞설 수 있도록 나를 키워 나가는 것. 청춘일 때만 할 수 있고 또 해내야 하는 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늘 뜨고 지는 해처럼 이 여행도 설레게 떠올랐다가 노곤하게 저문다. 저무는 해를 보며 째깍째깍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행이 끝나며 긴장이 풀렸는지 멜버른 공항에서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비싸기도 한 공항 맥주가!) 벌건 얼굴로 아이에게 이미 물었던 질문을 자꾸 또 던진다.
이번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뭐가 제일 좋았어?
아, 다 대답했잖아.
아, 맞네. 이미 다 물어봤네. 그럼 집에 가면 제일 먹고 싶은 건?
아, 치킨라이스라고!!!
아, 알았다고. 근데 조호바루는 지금 몇 도야?
30도!
오예! 빨리 가자, 따뜻한 나라로!
비행기에서 정신없이 자고 집으로 국경을 넘어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또 정신없이 잤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집이다. 남편이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며 축구를 보며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 풍경이 맞네.
또 한 번의 여행이 끝났다.
끝나는 곳에는 늘 새 길이 있을 지어니.
그 새 길을 나는 종종 그려볼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찐한 사랑을 주고받던 그녀가 떠난 이후의 내 삶을 말이다.
너는 너의 청춘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렴.
나도 다시 나의 청춘을 찾아갈 테니.
너와 나의 청춘을,
우리 같이 응원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