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가기로 한 일요일 아침.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다. 옷이 일곱 겹에서 네 겹으로 줄었고 가벼워진 옷차림만큼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니 어깨도 펴진다. 어깨가 펴지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웃는 얼굴을 보니 덩달아 같이 미소 짓게 된다. 기온이 고작 3도 올랐을 뿐인데 이렇게 행복하다니.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키가 작고 아담했다. 지난주는 시드니에서, 그전 주는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싱가포르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번 주는 멜버른에서.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세계 곳곳의 놀이터를 섭렵하고 책방과 도서관을 탐방하고 벼룩시장을 쫓아다니다가 이제 방방곡곡 성당도 찾아다닌다. 함께 경험하는 세상이 더 넓어진다.
미사가 끝나고는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멜버른 사는 친구도 꼭 먹어보라고 추천했다는 베이커리에 간다. 사실 며칠 전에 웨이팅이 너무 길어 포기했는데 오늘은 줄을 서보기로 한다. 오래간만에 날씨도 좋고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아몬드 크루아상, 뺑오쇼콜라와 시나몬 롤을 사고 근처에서 따뜻한 롱블랙을 테이크아웃해 길거리 벤치에 앉았다. 다른 빵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는데 아몬드 크루아상은 유난히 묵직했다. 한 입 베어무니 바삭이는 빵에 부드러운 아몬드 크림이 입 안에서 아름답게 뒤섞인다. 하지만 굳이 또 사 먹지는 않을 듯한 맛이다. 입가에 빵가루를 잔뜩 묻히며 빵 세 개를 해치우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차도를 점령하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시위대의 행진이다. 아이가 말했다.
가서 같이 걸어도 돼?
같이 걷고 싶어?
응.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딸아. 우리 가족이 세계 평화에 일조해야 할 몫이 있다면 그건 엄마랑 아빠가 젊었을 때 다 했단다. 그러니 너는 안 해도 돼!
아이가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 집 전통인데 나도 지켜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아이 손을 잡고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외쳤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폭격을 멈춰라, 지금 당장! 당장! 당장!
유모차에 앉은 아기와 백발의 노인이 나란히 걷는다. 다양한 얼굴색에 옷차림도 각양각색. 마이크를 든 사람이 말한다.
당장 당장 당장을 외칠 때는 팔을 힘차게 뻗어주세요!
아이가 어렸을 때 유모차에 태워 한두 번 거리에 나가본 적은 있는데, 그 아이가 커서 내 옆에서 팔뚝질 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아이가 또 말한다.
조금 더 앞으로 가도 돼?
더 앞으로 가자고?
그 정도쯤이야 베테랑 엄마에게는 껌이다. 아이 손을 잡고 사람들을 요리조리 앞질러 대오의 선두로 갔다. 마이크를 들고 선창을 외치는 사람이 보일 때까지, 그 주변에서 북 치는 사람들이 보일 때까지. 둥둥둥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북을 친다. 내가 거리에서 치던 북이 아니라 큰북, 작은북의 그 북이지만 어떤 북이든 북소리는 심장에 바로 가닿는다. 새삼스럽게 심장이 콩당콩당 뛴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여기서 이렇게 또 엿본다.
대학 시절부터 멀리했던 성당에 다시 나가게 된 것도 아이 때문이었고, (아이가 다 커서 종교를 원했다) 잠깐이나마 거리에 다시 선 것도 아이 덕분이다. 과거의 삶을 홀가분하게, 어쩌면 아쉬워하며 내려놓고 아이가 당기는 쪽으로 와서 섰는데, 어쩌면 나는 내내 같은 곳에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같은 곳이었거나, 머나먼 길을 빙빙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아이가 자라면서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건가? 자기가 태어나기 전 나의 삶으로, 어쩌면 내가 서 있던 자리로? 나를 되돌려 놓고 너는 얼마나 멀리 가려고?
우리는 모두 팔레스티니안
팔레스탄에 자유를! 자유를!
이스라엘, 아웃 오브 팔레스타인!
아웃 오브 예멘!
아웃 오브 시리아!
아이가 묻는다. 저 나라들을 다 쳐들어갔어?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도로 한가운데를 걷는데 생각해 보니 트램이 다니는 길이다. 아니, 이 사람들! 전 세계 트램 수도라는 멜버른의 트램까지 멈춰 세우고 거리를 점령했구나. (멜버른은 자칭 ‘세계 트램의 수도 Tram Capital of the World다’) 트램을 멈춰 세운 대오에서 조금 더 걷다가 퀸빅토리아 마켓이 문 닫기 전에 빠져나왔다. 더 사야 할 친구들 선물이 있단다. 다시 인도로 올라와 걸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어땠어?
뭐가 어때.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같이 걸었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한 거야?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마이크를 잡거나 북을 치고 싶은 거니? 깃발이라도 들어야 뭔갈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긴 말은 안 했지만 옛날 옛적 논 팔고 소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을 바라보던 부모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대부분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수상한 시절, 제발 선두에만 서지 말라던 부모님들의 그 마음을 말이다. 지금 내 맘이 딱 그 맘이다.
무사히 선물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또 낮잠을 잤다. 나는 잠시 뒤척이다 일어나 감자를 삶아 으깨고 브로콜리를 삶고 두부를 부치고 소시지를 굽고 수프를 데우고 팽이버섯을 구워 국적불명의 한 접시를 차렸다. 좁은 부엌에서 하나씩 밖에 없는 팬과 냄비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막상 내놓고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후다닥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아이를 깨워놓고 잠깐 나가 사 온 와인도 한 병 땄다. 호주에서 마시는 11달러짜리 마지막 와인이 되겠지. 저녁을 든든히 먹고 산책에 나섰다. 거의 끝나가는 여행도 아쉽고 날씨도 별로 춥지 않고 낮잠도 든든히 자고 일어났으니까.
산책이라지만 사실 주황색 귀마개를 사러 간 것이었다. 숙소가 37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곤 했다. 나는 그러다 금방 괜찮아졌는데 아이는 며칠 째 귀가 먹먹하다고 성화다. 멜버른에 도착한 날부터 약간의 감기 기운 때문에 코를 많이 풀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고도 차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껌도 사서 씹혀보고 뜨거운 물수건도 귀에 대 보았지만 며칠 째 차도가 없었다. 어쨌든 밥을 맛있게 먹고 또 귀가 불편하시다 하여 땅으로 내려가 좀 걷기로 한 것이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었지만 (나는야 T 엄마) 딱히 방법을 몰랐고 아이는 부쩍 짜증이 많았다. 그래서 귀가 좀 뚫렸나 안 뚫렸냐 물으며 멜버른의 밤길을 걷고 있는데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난 신전 떡볶이!
오, 떡볶이! 먹을까?
아, 요즘 너무 많이 먹었는데 돼지 돼도 괜찮겠지?
그럼 당연하지! 여행인데!
신나게 떡볶이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한 그릇 뚝딱했다.
귀는 좀 어때?
몰라. 똑같은데 그럭저럭 괜찮아.
이것은 그야말로, 귀 막힘은 변함없는데 떡볶이로 너그러워진 마음이 그에 대한 짜증을 없애준 상태라 할 수 있겠다. 떡볶이의 힘이다.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기보다 그저 기분을 좋게 해 주면 되는 것인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렇게 불편을 호소하던 상태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잘 안 되던 귀 막힘과 그로 인한 짜증이 난무하던 곳에 떡볶이 한 그릇의 평화가 깃들었다. 떡볶이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평화는 좋은 것이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에도 부디 평화가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