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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r 14. 2021

00. 이쯤 놀았어도 더 놀고 싶다

2021.3.1 퇴사 뒤의 안부를 전합니다

2017.4.3-2021.3.1, 퇴직금 지급 명세서에 적힌 근속연수는 3년 10개월 27일입니다.

한 곳에서 이리 오래 일한 적은 초등학교 6년 이후 처음이네요.

저는 대학교도 1.5년/1.5년/1년을 끊어 다녔습니다. 2015년 휴학 시즌은 정말 재밌었는데 말이죠.

꽤나 큰돈이 퇴직금으로 나왔으나, 90%는 이미 제 이 안락한 집의 보증금으로 들어가 있기에

소고기 10번 사 먹을 돈 정도만 입금이 될 예정입니다.




퇴직 일자는 3월 1일이었으나, 저는 2월 내내 연차를 쓰고 놀러 다녔습니다. 2월은 이렇게 보냈어요.

1월 31일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바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 2월 1일 한라산 등산을 계획했으나,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친구와 비가 왕왕 내리는 사려니 숲길을 다섯 시간쯤 걸었습니다.

비 오는 날의 제주는 할 게 많지 않아요.

다행히 이 친구와는 무엇을 해도 사흘 밤낮을 토크로만 끌어갈 수 있는 관계인지라 한라산 등산을 못한 그의 아쉬움만 뒤로하고 다시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리고 그다음 주 화요일에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 내려가, 새벽에 한라산 등산을 시작해 그날 오후 비행기로 돌아왔습니다. 그다음 날 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었거든요.

그 뒤 2월 내내 여러 사람들과 2인, 3인, 4인 약속을 잡고 산책하고 등산하고 책 읽고

또 요즘 갓겜이 되어버린 로아를 시작해서 살살 게임도 했습니다.


설에 단양에 내려가 할머니와 회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머니는 회사를 30년이 넘게 다니셨으니 지금도 더보다 세상사를 더 많이 압니다.

잘했고, 다음 일도 잘 할거다라는 심플한 축사는 할머니의 클래스를 보여줍니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가치 있을 때가 있다는 걸 할머니만큼 잘 아실 분이 있을까요.

제가 이제 때가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가족 누구도 말리지 않았어요.

이 시기는 3년 10개월 27일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거였고, 저를 오래 안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넘어가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여러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고 싶은데, 집합 금지가 해제될 날은 아직도 멀어 보입니다.

소규모 만남이 가끔은 더 힘들 때가 있어요.

다인이면 다 불러 모으면 되는데 4인 아래로는 파티의 구성을 좀 맞춰야 합니다.

또, 약속을 주로 회사분들과 잡고 있는데, 절반은 회사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라 3월은 모임을 조금 쉬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백화점 물이 빠지면 그때는 나아질까 싶다가도, 파크원 이야기에 열을 내는 저를 보면 한참 멀었구나 싶습니다.


아, 그리고 여수에도 잠시 다녀왔습니다.

5월에 있을 친구 결혼식의 사회를 부탁받았고, 어제는 친구의 예비신부님과 함께 상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결혼식 사회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야겠어요.




요즘 제 일상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틀에 한번 헬스장에 가요.

2월에 북한산을 가볍게 보고 시도했다가 혼쭐난 것 + 헬스장에서 괜히 무게 올린 것 때문에

왼쪽 무릎에 살짝 무리가 가서 등산과 러닝은 쉬고 있습니다.

운동 뒤에 집에 와서 씻고, 학교 도서관에 가거나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점심은 보통 안 먹는 편이었는데, 무릎 때문에 약을 잠깐 먹어야 하기도 하고

이제는 한 끼만 먹으면 속이 너무 아파서 하루 두 끼는 챙겨 먹고 있습니다.

책을 읽든, 게임을 하든, 산책을 다니든 오후를 설렁설렁 보내고

저녁 약속이 있다면 그곳으로, 아니라면 집으로 돌아와 또 설렁설렁 보냅니다.

요즘은 저녁 약속도 잘 없어요. 고기 먹고 싶은데 혼자서 못하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틀에 한 번쯤은 다시 글을 통해 제 안부를 전하려 합니다.

집은 언제 이사할 건지, 앞으로 뭘 하려고 하고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아무 일도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적을 거예요.


제 평화로운 일상에 많은 일들이 끼어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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