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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Jun 06. 2021

09. 남한산성 야행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주 여행의 추억을 곁들인

제 나름대로 친우들을 그룹화 해 뒀습니다.

특별한 기준은 아니고, 그냥 만난 시공간 순이예요.

고등학교(기숙사) 친구들은 A, 대학교 과동기들 B, 대학교 동아리 C, 군대에서 만난 사람 D 뭐 요렇게 나갑니다.

저번에 찬찬히 따져보니 (전)회사에서 만난 분들 H까지 있더군요.

그룹 간에 겹치기도 하고, 그룹 내에서도 갈라지기도 하는데, (드림클래스를 두번해서 G그룹은 G-1,  G-2로 나눠져요!) 제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저를 위해서, 또 마구 섞인 제 말을 들어주는 친구들을 위해서도 나름의 꼬리표를 붙여봤었습니다.


A그룹 친구들이야 뭐 다 15년쯤 봤고, B나 C도 이제 다 10년이 훌쩍 넘었죠.

오래지만 또 멀지 않은 것 같던 군대에서 연이 시작된 D그룹 친구들과도 벌써 10년을 만납니다.

어제는 제가 청주에서 군생활을 할 때 후임으로 만난(군생활 같이 한 거 1년 vs. 전역하고 만난 거 9년이라 더 이상 군대 후임이었다고 부르기도 민망한) 친구와 함께 남한산성 야간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친구랑은 마지막 출근(21.1.31)이 끝나고 그날 저녁에 바로 내려간 제주에서 겨울 한라산 산행을 도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지난 3월 북한산 산행을 도전했다가 제가 준비 없이 늦잠까지 자버려서 결국 산에서 못 만나기도 했었어요. (따로 올라서 만날 계획이었는데 북한산이 만만하지 않더라구요)

4월에 다행히 북한산 종주를 성공했으나 그날 정상에만 강한 비우박이 내려서 신나게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등산화를 사지 않던 친구였는데, 이번에 그레고리에서 예쁜 등산화를 산 기념으로 남한산성에 다녀왔어요.


아, 이 친구랑은 지난 2월에 남한산성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눈이 많이 쌓인 걸 생각 못하고 갔다가 아주 고생한 기억도 납니다.

고생만 한 것 같지만, 북악산이나 다른 좀 편한 산들을 다녀온 좋은 기억들은 따로 적지 않아서 그래요.

이 친구랑은 여행도 엄청 많이 다니고, 고생을 좇아 가는 걸 즐기기도 합니다.


다시 어제 남한산성 야(간산)행으로 돌아오면, 다섯 시 조금 넘은 시간에 남한산성역에서 만나서 출발했어요.

남한산성은 제가 삼전동으로 이사 와서 신촌에 살 때보다 훨씬 가까워진 산입니다.

제가 서울 야경명소 중 첫째로 꼽는 곳이라, 밤에 차타고는 자주 갔었고 등산도 두어 번 다녀왔는데 느지막이 걸어서 출발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인터넷을 살펴보니 길도 잘 되어있고, 많이들 다니시는 것 같아 걱정 없이 출발했습니다.

늦게 출발한 건 6월 한낮의 더위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가서 저녁 먹고 돌아오면 딱 좋을 것 같기도 했어요!

역에서 다섯 시에 출발해서 남문을 지나 식당들이 많이 있는 산성 가운데 공원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두부만드는집'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내려오니 역에 열 시쯤 도착한 것 같아요.

오르고 내리는 길은 역시 시설이 잘 되어있어 좋았습니다.

다만, 제 친구는 조금 힘들어했어요. 저와 제 친구는 남한산성과 첫 기억을 묘하게 시작했거든요.




저의 D그룹(군대에서 시작한 인연)에 이 친구와 함께 아주 가깝게 지내는 또 다른 친구가 있습니다.

셋이서 남한산성 야경을 보러 간 첫날이었어요.

차로 가시면 보통 욕심을 낸다면 국청사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는데 (이제는 절대 피하려 합니다. 오르내리는 길이 좁은 산길이며 외길이라 아래에 차를 대고 올라가시는걸 절대 추천해요!), 차에서 내려 요 국청사를 지나는 그 1분이 참 묘했어요.

저도 등산을 즐기는 편이고, 많은 절들에 어떤 시간에 가도 참 편안하고 잔잔하다고 느끼는데 그날 그 국청사 외곽길을 돌아 서문으로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음'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종교가 천주교이지만, 절에 가도 항상 환영받는다고 느꼈는데 국청사에 들어가자마자 절 안에서 아주 차갑고 신경질 적인 시선이 계속 느껴졌었어요. 셋 모두에게 말이죠.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었지만, 그날 국청사와 남한산이 참 음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야경을 보러 갈 때나, 등산을 하러 갈 때 남한산이 다른 명산들에 비해 계속 음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요.

아, 저는 사주도 신점도 본 적 없고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분위기에 민감한 편이라 그 '뿜뿜'거리는 '양'한 느낌이나 '사각사각'거리는 조용한 느낌, '차르륵' 내려앉는 '음'한 느낌들을 구분하거든요.

저에게 남한산은 가라앉는 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입니다.

그리고 이 가라앉은 음한 느낌의 극을 경험했을 때도 이번 남한산에 같이 간 친구와 함께였습니다.


저는 경주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지금까지 여행으로만 30번은 넘게 갔어요!

똑같은 곳을 똑같은 사람이랑 가도 좋고, 다르게 가도 좋은데 이 친구랑 경주에 2박 3일 놀러 갔을 때 경주 바다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주에 가면 보통 불국사와 경주 내륙 쪽을 더 자주 가는데(바다가 멀어요...) 그때는 주상절리와 문무왕릉을 보고 싶었어요.

한참을 운전해서 문무왕릉 앞에 도착해 바다로 나갔는데, 그 뿌연 장막을 통과해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둘 다 정신을 못 차리게 삼십 분쯤 추욱 쳐져있다가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때만 해도 앞에 굿이나 제사를 드리시는 분들이 있었는데(작년 여름에 불법 시설물을 강제 철거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 영향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계속 연기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어요. 지금 되돌아봐도 묘합니다.

차를 돌려 경주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참 신기해했었어요. 물론 심신이 많이 지쳐 그날은 일찍 잤습니다.

이번 남한산성 야행에서도 친구는 쳐지는 느낌이 많이 들어 힘들어했는데, 돌아와서 걸음수를 보니 3만보가 훌쩍 넘어있어 꼭 기운 때문만은 아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름은 외부활동을 좋아하는 저에게도 피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등산은 아마도 이번처럼 늦은 저녁부터 아침 일찍에만, 자전거도 최대한 시원할 때만이 기조입니다.

헬스장에도 사람이 많이 늘어난 것이 느껴져요.

꽃다발 구조물 때문에 산 말채나무를 물에 담가 뒀는데,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었더니, 또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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