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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그건 내가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생각이 날 때면 늘 고마웠던 일만 생각 나."

"에휴, 내가 볼 땐 선배도 항상 잘했어. 수민 아빠가 우리 만나면 맨날 선배 자랑이 늘어졌었는 걸 뭐."

"아냐, 난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아."

"그런 소리 마. 둘 다 너무 잘하고 살았어."


후배와 긴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또 남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옛 기억이 딸려 올라오면 항상 남편에게서 받은 것들만 생각이 난다.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것이 없었다는 자책은 참 아프다. 아무 맥락 없이 또다시 기억의 우물을 천천히 길어 올린다. 나는 남편을 위해 뭘 했었나.


남편은 어렸을 때 엄마를 잃고, 아버님이 재혼을 해서 소위 계모의 손에서 자랐다. 전처 자식이라 그랬을까? 남편의 입을 통해 드문드문 듣게 되는 시어머니 이야기는 언제나 쓸쓸했다. 많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해 줄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서로 나누며 그렇게 사는 것이 가정일 텐데, 어머님은 참 차갑고 이기적인 분이셨다. 그래서 아마 남편은 가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우리들에게 그렇게 잘했는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내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한 일은 아침마다 남편의 속옷을 챙기고 와이셔츠를 다린 일이다. 워낙 자상하고 뭐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속옷을 챙겨 입게 두지 않았다.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가면 나는 몇 번씩 손 다림질을 해서 가지런하게 정돈된 속옷과 양말을 챙겨 침대 맡에 놓아주고, 수건을 욕실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욕실에 있는 수건보다는 더 뽀송뽀송한 수건을. 그리고는 와이셔츠를 다렸다. 샤워하고 나오면 손잡이에서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고, 막 꺼내 가지런히 놓은 속옷을 입고, 아직 온기나 남은 셔츠를 입을 수 있도록.


생각해보면 따뜻한 대접을 받고 자라지 못한 그의 내면 깊숙한 슬픔을 나는 그 작은 정성을 통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원했다. 바쁜 아침 시간에 혼자 쓱쓱 속옷도 찾아 입고, 셔츠도 다려 입고 다닐 사람이지만 나는 그 일을 내가 해 주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 남편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우리 아내가 아침마다 셔츠 다려주고 속옷도 챙겨준다고, 그게 너무 고맙다고 말을 했다.

"뭐야, **이가 집에서는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집에 돈도 잘 안 갖다 주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그런 걸 뭐하러 해주냐?"

"아니, 저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혼자 하게 두지 뭐하는 짓이여?"

"셔츠를 누가 요즘 직접 다리냐? 세탁소에 맡기면 얼마나 한다고."

그날 우린 그 자리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난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마음이 불편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린 그 일로 작은 말다툼을 했었다.

"아니, 사람 많은 데서 창피하게 그런 말을 왜 해요?"

"뭐가 창피해. 우리 마누라가 최고라는 말인데."

"요즘 누가 남편 속옷 챙기고 셔츠를 다려줘요? 다 자기가 해야지?"

"그러니까, 난 그래서 행복하고 고맙다고.. 흐으으으."


아침마다 내가 그 일을 하며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남편은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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