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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운동장 텃밭

남편이 교장으로 발령이 나고 첫 주말에 학교 한 바퀴를 돌았다. 산자락 끝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학교는 외관이 빨간 벽돌로 둘려 있고, 담쟁이가 멋스럽게 타고 올라와서 참 평화롭고 아담했다. 화단을 지나 본관에서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넓은 운동장을 만나게 된다. 비탈진 곳에 학교를 짓느라 저렇게 햇살을 가득 품은 운동장이 생겼나 보다. 그곳에서 발랄한 웃음을 날리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 운동장 한편에 오래된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어느 시절엔가 누군가는 여기에서 열심히 롤러를 굴리면서 땅을 다지고 소금을 뿌려가며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테니스 레슨도 받고 몇몇 사람들은 내기 시합도 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사용 안 한 지 오래되어 철조망 안으로 잡초가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 있었다.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많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소금기 가득한 저 땅에 잡초만 자라난 것이 무너져 가는 오래된 집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 이거 뭐예요? 운동장을 엄청 많이 차지하네. 너무 보기 안 좋다.”

“그렇지? 여기 이 철조망을 치우고, 땅의 소금기를 모두 걷어내고, 황토를 부어 텃밭을 만들 거야.”

“텃밭? 이렇게 단단하게 굳어진 땅에 가능해요?”

“그럼. 올해는 힘들겠지만 내년 봄에는 여기에 뭔가를 심어야지.”


남편은 그 버려진 땅에 가을 내내 정성을 쏟았다. 지역사회 지원을 받아 예산을 따내고, 울타리를 철거하고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내 소금기를 걷어냈다. 황토를 사다가 붓고 부엽토 거름을 가져다 섞어두고는 고랑을 내어 제법 알찬 텃밭으로 만들어냈다. 퇴근 후 운동장 텃밭으로 가서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흙을 만지느라 매일 귀가 시간이 늦었다. 도시농업 박람회도 쫓아다니고, 텃밭 가꾸기 연수도 찾아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텃밭을 만들어갔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인데 자연에 대한, 흙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나 보다.


다음 해, 남편은 그 텃밭을 분양하는 가정통신문을 냈다. 신청자가 많으면 3대가 함께 지내는 가정을 우선순위로 선정하여 한 고랑씩 가족 텃밭을 분양하고, 또 학급별로 조금씩 배당해서 갖가지 식물을 맘껏 심게 하였다.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감자 등 먹거리들과 작은 꽃을 피우는 야생초들이 종류별로 자라났다. 가족 단위로, 학급별로 그 텃밭에는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먹거리와 화초들은 무럭무럭 싱그럽게도 자랐다. 방과 후,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학교가 조용하기 마련인데, 학교 텃밭 덕분에 집에 갔다가 햇살의 더운 기운이 사그라들면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고추, 상추 따러 학교로 들어오는 발길이 계속되었다.

학급별로 아이들은 자신의 밭에 직접 농작물을 심고 얼마나 자랐나 들여다본다. 작고 여린 손으로 작은 노동을 하고, 비와 햇살을 귀하게 여기며, 정성을 먹고 자란 먹거리들을 이제 곧 직접 수확을 해서 먹어보겠다고 야무진 꿈을 그 텃밭에서 꾸곤 하였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은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이 샐러드가 되기도 하고, 불고기의 쌈이 되어 아이들 급식에 오르기도 하였다.


운동장 텃밭 한 구석에는 농기구 보관함을 만들었다. 간단한 농기구를 보관해 놓고, 누구든지 사용하고 제자리에 보관하도록 하였고, 수도관을 연결하여 시원한 물줄기를 자신들의 텃밭에 맘껏 뿌릴 수 있도록, 남편은 꼼꼼하게도 챙겼다. 게다가 옆에 자그마한 원두막을 하나 설치해 놓으니 신발 벗고 올라앉아 쉬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곳은 마치 시골의 풍경이 되살아나는 공간이 되었다.


나도 주말이면 몇 번 남편과 그 텃밭 데이트를 하였다. 신이 나서 행복한 얼굴로 텃밭 자랑이 늘어지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 텃밭에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꼼지락거리며 통통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래, 당신은 그 텃밭에서 참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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