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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당신의 성경책

그날은 지금도 낯설다.

남편의 만 50세 되는 생일날, 가족이 모여 우리가 즐겨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축하 이벤트를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한마디 폭탄선언을 했다.

" 지금까지 50년 내 힘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고, 오늘부터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할 거야. 우리 이번 주부터 당신 다니는 교회 함께 가자."


이건 정말 폭탄선언이었다.

사실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고 무슨 연유에선지 종교에 대한 부정적 신념도 있던 사람이다. 나도 날라리 신자인지라 교회 가자 소리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친정 식구들이 모이면 우리 집안에 교회 안 다니는 유일한 일원인 남편에게 친정아버지는 한 말씀씩 꼭 하셨다.

“우리 모든 가족의 기도 제목이 자네 교회 나가는 걸세.”

그러면 그냥 웃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다행히 장모님을 엄마처럼 의지하며 따르던 사람이라 장모님이 눈물 흘리며 하는 기도를 대단하다고 여겼고, 무슨 일만 있으면 장모님께 기도 부탁을 한다.

" 장모님, 이번에 좀 빡세게 기도해 주세요. 장학사 발표가 담주인데 이번에 왠지 좀 불안해요. 아셨죠? 다른 기도보다 제 기도 1번으로 해 주세요. 아셨죠?"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가겠다고 했고, 정말 거짓말처럼 그다음 주부터 출장 가는 경우를 빼고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아침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그 2년간의 시간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늦잠이 많은 나는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정장을 차려입고 소파에 앉아 가만히 성경책을 읽는다. 이제 준비하지~~~ 라는 말을 들어야 일어나서는 허둥지둥 씻고 교회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인데 오랫동안 다니던 사람처럼 비교적 익숙하게 예배 시간에 참여한다. 처음엔 립싱크로 찬송가를 부르더니 어느 때부터인가는 소리 내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고, 예배 순서마다 얼마나 진지한지 모른다. 주보에 실린 목사님의 칼럼도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가끔은 좋은 글귀를 핸드폰에 메모하기도 한다. 그 모습이 가끔 연극처럼 느껴져서 혼자 키득키득 웃은 적도 있다.      


아침 8시 30분 1부 예배를 마치면 우리 부부는 동네 욕쟁이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밥집을 들른다. 일요일 아침 시간에 문 연 식당도 많지 않지만, 그 식당은 메뉴를 묻지 않는 그냥 가정식 백반집이다. 시골 할머니 밥상 그대로다. 동태찌개가 일품이고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도 정말 기가 막히다. 게다가 밑반찬으로 내주시는 반찬은 너무 맛있어서 가끔 좀 달라고 해서 얻어가기도 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 혼자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경우는 그 밥집에 혼자 가서 먹고 온다. 우리가 유일한 일요일 아침 손님인데, 우리 안 가면 할머니 기다리신다면서. 그런데 매주 우리가 들르던 그 밥집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 식당 안이 온통 불교 분위기로 가득하다. 좀 우습기도 하다. 교회에 가서 경건하게 아침 예배드리고, 거의 절 수준의 인테리어를 한 밥집에서 식사를 마치면 집에 가서 편안한 휴일을 보냈다. 나는 거의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자는 편인데 남편은 그때부터 성경책을 붙들고 읽기 시작한다. 성격대로 여러 가지 형광펜을 들고 나름 규칙을 갖고 색깔로 밑줄을 그으면서.....     


남편을 보내 놓고 남편의 성경책을 천천히 넘겨보다가 너무 놀랐다. 성경책에 밑줄이 그어진 것은 물론 찬송가에도 곳곳에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다. 목사님도 그 성경책을 보시고는 목회 활동 30년 넘도록 찬송가에 밑줄 그어진 것은 처음 본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나 혼자 외롭고 쓸쓸할 때 힘이 되어줄 거라는 그런 내용의 찬송가 구절마다 밑줄 그어진 것을 보면서 붙들고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모른다. 그 구절을 붙들고 남편은 많은 위로를 받았구나.


남편은 그렇게 딱 2년을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고, 그 가운데 큰 위로를 받았다. 습관처럼 자기는 말년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 말년 복은 모두 나에게 넘겨준다더니, 지금 생각해보면 짧지만 마지막 그의 영혼을 붙잡아준 신앙생활이 그에겐 말년 복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성경책을 두 아이들이 서로 갖겠다고 하더니, 우리 딸아이가 이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 딸도 아빠의 마음을 따라가며 성경을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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