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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노후 대책

결혼 후 십 년 동안 아기가 없었던 선배가 있었다. 늙어서 애 낳고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말하는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선배다. 아이가 생기지 않던 그 세월이 참 아팠다고 한다. 길거리를 걸어가도 온통 배부른 임산부들만 보였다. 배가 불러 허리에 손을 짚고 지나가는 임산부도 부럽고, 옆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쩔쩔매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났다고 했다. 다들 저렇게 임신을 잘도 하는데 왜 나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단다. 아기를 갖으려고 온갖 노력을 해 왔기에 십 년이라는 세월은 참 잔혹했다.


나에게도 남편이 없는 지금은 참 잔혹하다. 무심코 TV 드라마에서 심장이 멈추는 기계음을 듣게 되면 팔뚝의 솜털이 솟았다. 아마 누군가는 식상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눈여겨보지도 않을 장면이지만 나는 마치 한 여름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서웠다. 누가 아프다는 소식만 들어도 눈물이 났었다. 세월이 지났으니 요즘은 좀 달라졌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나이 든 부부의 뒷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 소곤소곤 마주바라보는 커플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삼킨다. 언제쯤 편안해 질까? 고요한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우리 부부는 유난히 둘이 딱 붙어 다녔다. 어디 가나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했고, 둘이 함께 맛있는 것 먹으러도 다니고 함께 맥주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했다. 딸아이가 어릴 때, “아빠는 누가 제일 좋아?”하는 질문에도 항상 “아빠는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해서 아이를 울리기도 했다. 우리는 같은 대학 선후배였고, 둘 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기에 생활 패턴과 시간대가 같았고, 공유되는 경험이 많아서 붙어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알거렸다.     


아이들이 다 자라면 퇴임하고 시골에 내려가 살 계획이었다. 어디 내려가서 살까 궁리하면서 내려가 살 곳을 답사 겸 여행 겸 많이도 돌아다녔다. 제주도 아니면 전라도 해안가 정도로 정하고 내려가면 농가를 하나 구입해서 깔끔하고 살기 편하게 고치고, 작은 텃밭 하나 일구면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살자고 했었다. 뭐든 뚝딱뚝딱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캠핑카를 만들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돌아다니며 지내자고 했었다. 아이들 결혼해서 손주를 보게 되면 다 키워주겠다고 호언장담도 했다. 시골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며 잘 키워 주리라 들떠하던 사람.      


나에게 필요한 노후 대책을 가끔 생각한다. 나는 혼자 늙어가야 하는 것이 두렵다.

누구랑 살아야 할까? 함께 놀면서 늙어갈 단짝 친구가 없는데 뭐하며 살지? 혼자 살아가다 힘 빠지고 병들면 요양병원에 가야겠지? 아이들을 다 결혼시키고 나면 그다음은 어디서 살아야 할까? 집 하나 있고, 연금 있으니 경제적 걱정은 없다. 그러나 혼자서 나이 들고 늙어가고 병들어간다는 것은 너무 큰 두려움이다. 시간이 점점 많아질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가 나의 가장 큰 숙제이다.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어떤 사람들과 곁에서 가까이에서 살아야 하나?     


아무 생각 없이 머리 감고 나오는 딸한테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아무래도 너 가까이 살아야겠다. 넌 나에게서 멀리 못가. 너 이사 가면 한 30분 이내 거리로 따라붙을 거야. 알았어?”

"제발, 꼭 그렇게 해 주시와요."


이런 가벼운 대화로 얼른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른다. 서둘러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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