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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29. 2020

들어봐, 몽돌 해수욕장 파도 소리야!


그는 태권도 선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고 체고를 진학했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국가대표 상비군이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수를 하고, 대학을 관련학과로 진학을 하고 청와대나 아니면 어디 중동에서 보디가드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돈도 많이 벌고, 태권도 계통에서 한몫을 해내고 싶었단다. 그러나 뻔한 스토리처럼 그는 좌절을 경험했다. 


엘리트 체육 코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를 통해 드문드문 듣게 되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리 녹녹지 않은 길인가 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도 아버님의 뒷바라지는 눈물 없인 듣기 힘들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이느라고 퇴근하신 후 몸에 좋은 재료를 구해 먹이려고 많은 수고를 하셨다. 그래서 아마 누구보다 멋지게 태권도로 성공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에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엘리트 체육의 비합리적인 구조 속에서 상처를 받았고, 과감하게 진로를 바꿔 교육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그 당시에는 체육 교육을 위해 체육 특기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학 때 태권도 동아리에서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했단다. 몸을 던져 이단 옆차기로 나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여러 사람 마음 깨나 설레게 했다는 후일담을 듣기도 했다. 나는 그가 초임교사로 발령을 받은 이후에 그를 만났기에 본 적은 없지만.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교사의 길에 접어들어서는 열정적으로 살았다. 내가 그를 만난 시절이 바로 그즈음이었으니까.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큰 덩치에 놀란다.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고 각진 생김새이지만 무엇보다 목소리가 크고 탁하다. 태권도 사범을 오래 하면서 목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지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집도 불고, 눈가의 잔주름과 흰머리가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눈빛이 강렬하고 무엇보다 큰 덩치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외향적이고 와일드한 남자인 줄 안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감성이 풍부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표면적인 관계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그는 어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면 다음에 꼭 그곳을 데려가 가족을 먹이고 싶어 했다.

멋진 곳을 다녀오면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가족들의 기념일을 늘 챙겨 깜짝 놀랄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술 한잔 걸치면 손에 파전, 동치미 김치, 생강 과자 등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주말이면 늦잠 푹 자라며 조용조용 음식을 준비해서 먹게 해 주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여수 어디쯤으로 출장을 가서는 밤늦은 시각에 전화를 걸어서는 말한다. 

“들어봐, 몽돌 해수욕장 파도 소리야!”

“보름달이 떠서 이 밤에 영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보고 싶다.”

 졸린 목소리로 장난 삼아 말한다.  

“분위기 좋은데, 노래 한번 불러 주지요.”

잘하지는 못해도 내가 좋아하던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도 불러준다.

"옆에 사람 있으면 그렇게 못 부르는 노래 부르는 거 아니에요."

너스레를 떤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날이 밝아오기도 했다. 그는 나의 소울메이트였다.       


아이들 다 결혼시키면 둘이 비슷한 시기에 퇴직하고, 작지만 실속 있는 캠핑카를 마련해서 전국을 다니며 여행을 하자고 했었다. 다 늙어서 집 놔두고 웬 개고생이냐며, 그래도 큰 개는 한 마리 데리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투덜투덜하던 그 시절을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그는 알겠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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